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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야 들린다

보이지 않아야 들린다

 

 

 

 

 

 

 

 

 

 

 

 

 

 

보이지 않아야 들린다(22:1-30)

 

 

우리가 있는 말은 내가 어디서 났고, 내가 어디서 공부했고,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고 하는 나의 열심입니다.

우리의 삶의 최고의 말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묶인채로 사람들 앞에 하는 말속에 자신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3)

 

열심의 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열심의 끝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4)

 

나의 열심의 끝은 결국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결박하는 일이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다들 너무 열심히 살기 때문입니다.

율법입니다.

열심의 끝장은 율법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답이 없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 보여줍니다.

율법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열심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은 율법 아래의 삶을 그대로 예수 믿는 삶으로 연결합니다.

 

열심으로 같았으면 예수님이 율법을 믿으라 했을 것입니다.

열심의 대표인 율법이 답이 없기에 십자가로 오셨습니다.

세상에 답이 없어야 열심을 내려 놓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적 소망이 없음의 상징입니다.

세상이 소망이 없어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의 눈을 닫아버립니다.

세상의 소망을 끊으십니다.

세상의 소망, 열심의 소망이 없어져야 소리가 들립니다.

 

빛을 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는 성령의 임재입니다.

성령의 소리는 세상적 소망이 끊어져야 들립니다.

바울에게 세상적 소망의 끊어짐은 바로 눈입니다.

눈을 보지 못하면 바로 신분과 사회적 위치의 절망입니다.

희망없음입니다. 그가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빛을 보지만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빛이 왔으되 빛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빛은 세상적 절망,

세상적 희망,

세상적 소망이 끊어져야 들립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9)

 

 

바울의 삶의 시작은 바로 소리가 들릴 때입니다.

눈이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새로운 살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게하기 위해 세상에 소망없음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잠시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삼일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성령의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듣게 하기 위해 눈을 닫으십니다.

바울은 절망과 희망의 순간을 손이 묶인채로 간증합니다.

 

간증의 내용은 바로 보고 들은 것입니다.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5)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삶의 시작은 빛을 보고 그리고 들은 것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말하고 증거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보지 않고 말하고

듣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증인의 유일한 일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이 증인으로 불리웠음을 간증합니다.

 

 

우리의 열심, 우리가 어디서 났고, 우리가 무엇을 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고 하는 자신의 열심을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보여주신 , 듣게 하신 것을 말하는 존재로 바뀌는 순간 우리의 삶은 성령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이 증인의 시작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시작입니다.

 

문제가 생기는가?

나의 열심을 말하고 나의 열심을 증거하고 나의 열심을 간증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는 일이 되면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열심으로 가면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열심을 증거하면 됩니다.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증인 이상이 되려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 무엇을 들으십니까?

무엇을 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말씀을 증거하기 바랍니다.

내가 일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사람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증인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안전을 보장 받는 길입니다.

바울이 없이 죽을 고비를 하나님이 넘게 하신 것은 증인의 삶을 포기 하지 않아서입니다.

가장 안전한 삶입니다.

증인의 ,

하나님이 드러나는 거룩의 길입니다.

 

 

증인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은,

듣고 것이 없다는 말은

아직 나는 인생을 열심아래 둔다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은 나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인으로 사람을 살리고

열심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죽이시겠습니까? 살리시겠습니까?

중에 하나입니다.

 

 

 

 

 * 함께 지내고 있는 이준석 최수진부부입니다.

이분들이 웃을 마음이 좋습니다.

지내온 시간을 알기 때문입니다.

활짝 웃는 웃음에 마음이 그렇게 좋습니다.

그렇게 웃음 가득한 행복한 미소가 변함없기를 바래봅니다.

섬김과 사랑에 감사의 마음 또한 잊지 않습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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