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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는 성령 가지 말라는 성령

가라는 성령 가지 말라는 성령

 

 

 

 

 

 

 

 

 

 

 

 

 

가라는 성령 가지 말라는 성령(21:1-6)

 

같은 성령입니다. 그런데 다른 말을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고 자신이 죽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령에 감동되어 가지 말라합니다.

어떤 성령이 정답입니까?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4)

 

 

같은 성령인데 당사자는 죽으러 가야하고 결박 당하러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가면 안된다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혼돈스러운 일이 아닐 없습니다.

무엇이 정답입니까?

 

예루살렘으로 가야합니까 가지 말아야합니까?

 

지금 우리들은 반대로합니다.

나는 사는 것을 택하고 다른 사람은 훈련하고 헌신하라고합니다.

 

나는 죽으러 가지 않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죽으러 가라고합니다.

나는 헌신하는데 인색하고 다른 사람은 헌신의 자리로 끌고 가려합니다.

복음이 반대로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든지 가지 않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길입니다.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그것은 하나님의 길입니다.

내가 아시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게도냐로 인도했습니다.

길의 방향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다만 나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앞길을 모릅니다.

앞일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 전부를 드리며 살겠다는 다짐과 고백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쉬운 길을 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자신 전부를 드리는 길을 가겠다고 각오하며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힘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유는 복음을 내가 사는 부적으로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쉽게 예수를 믿고 쉽게 교회를 다니고 쉽게 세상을 살려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들때,

아프고 눈물 날때는 전부를 바쳐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위해 전부를 드렸지만, 형편이 나아지니 쉽게 예수를 믿으려합니다.

쉽게 교회를 다니려합니다.

 

거꾸로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죽음도 각오하고 살기를 다짐했습니다.

살기가 편해지니 다른 사람을 죽는 길에 밀어 넣습니다.

살기가 편해지니 기도하는 것도, 예배를 드리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불편해졌습니다.

 

 

지금 세대의 풍요는 이전 세대의 불편함으로 세워졌습니다.

이전 세대의 기도로 세워졌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헌신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기도와 눈물과 헌신이 지나가고 그분들의 힘으로 살게 되니

그런 것들이 불편하고 귀찮게 되었습니다.

 

지금 누리는 복이 계속 복이 되려면 내가 불편함을 유지해야합니다.

지금 누리는 축복이 축복이 되려면 내가 기도와 헌신과 수고의 자리에 서야합니다.

 

자꾸만 거꾸로 갑니다.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도망가고 다른 사람은 헌신하라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나만 편하면 되고 나면 살면 된다는 생각속에서 살아갑니다.

 

성령은 사람을 아낍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울 피할 길을 주시고 어려운 길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바울을 위해 기도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바울은 같은 성령 안에서 자신을 성령이 마음 아파하는 현실이나 성령의 궁극적 길을 향하여 가기를 작정합니다.

 

아버지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아파하시고 눈물 흘리시지만 그러나 가야만하고 보내야만하는 길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깊은 생각을 하셨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기에 자신이 손해 되는 길을 가게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예언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압니다.

마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압니다.

세상에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성령의 방향성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결박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알지만 가는 것입니다.

 

 

생명을 생명으로…

 

그것이 성령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헌신과 수고와 생명으로 다른 땅에 생명이 전해집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명을 위해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거꾸로 합니다.

결박과 십자가를 피해가기를…

나의 잘됨과 나의 번성과 나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가야 하나님이 높이시는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파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범사에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우리의 믿음의 헌신의 삶을 먼저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야합니까? 가지 않아야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세는 어떤 길이라도 나를 드리겠다는 각오,

결박이라도 당하겠다는 자세,

어떤 길이라도 가겠다는 각오를 하는 사람을 나중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죽여도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의 결단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가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바울만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바울인것처럼 착각합니다. ^^

하나님은 당신이 각오해도 로마에 보내지 않습니다.

다만 로마라도 가겠다는 각오를 받아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면 사는 것이 편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생신을 맞아 함께 축하를 했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을 내려 놓으니 좋은 것으로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생 속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지

어머니를 통해 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