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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지식을 통해서 오는 완전한 능력

완전한 지식을 통해서 오는 완전한 능력

 

 

 

 

 

 

 

 

 

 

완전한 지식을 통해서 오는 완전한 능력 (19:1-19 )

 

불완전한 능력은 불완전한 지식에서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안다고 하지만 너무 몰라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없이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시지만 우리는 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 거하지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도 모르고 성령도 모릅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2)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우리는 믿습니다.

안다고 하지만 어설푼 우리를 발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지식,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정작 하나님이 알기 원하시는 지식은 모릅니다.

지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4)

 

다른 것은 너무나도 아는데 정작 예수님에 대하여서 경험하고 알고 깨닫는 것은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대안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지 않고 깨닫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체험하지 않고

다른 모든 것을 붙들려합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정보와 교훈과 깨달음입니다.

물론 그것을 알아야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하고 바르게 깨달아야 하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너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나야하고

나귀를 타야하고

여인의 후손으로 와야하고

동산에서 십자가를 져야하고

성령은 얼굴이 없는지

성령은 자신을 감추시는지

성령은 열매를 요구하는지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 후에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는지 등등 너무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갈증이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냥 진리를 모르고 뜻을 모르고 그냥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아니라 성령 안에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 안에 거하는 길은 진리, 말씀을 가능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방언도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바르고 단순한 복음에 대한 지식이 성령의 능력 안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때 능력안에 거하고 복음안에 거합니다.

 

 

우리의 설교속에,

우리의 대화속에

우리의 복음속에는 다른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예수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보, 우리의 지식이 떨어지면 불안합니다.

 

아닙니다.

없어져야 당당해집니다.

없어져야 본질이 보입니다.

사라지는 광야에 서야 예수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손에것을 놓아야 만나를 잡습니다.

손에 것을 던져야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습니다.

세상 것이 없어져야 하늘의 것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것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놓지 못하고 잡고서 부들부들 떨고 섰습니다.

 

 

아닙니다.

지식은 우리를 능력안에 거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진리안에 거합니다.

 

광야를 떠나 세상속에 거하면 다른 것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본질의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이 능력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무서운 것은 예수님을 붙잡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 바람을 보게합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파도를 보게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의 영이 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 바람을 보고 파도를 보게 하는 ,

오직 그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귀가 막혀도 들리는 음성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눈을 떠도 바람도 파도도 보이지 않으며

귀가 막혀도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과정속에 거해야합니다.

그것은 지식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를 가능합니다.

정보가 지식이 다른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말씀이 들리게 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이 깊어질수록 말씀을 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진리에 대한 지식이 우리를 능력안에 거하게합니다.

아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해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본질인 말씀을 읽고 외우고 묵상하게 해야합니다.

 

읽고 묵상하고 외우게 해야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세상과 다른 능력 가운데 거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세상적인 공부와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일이 그런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는 그런 놀라운 능력가운데 거하는 사람과 일들을 많이 만나게됩니다.

어제 만났던 목사님의 3 아이는 성경을 그렇게 읽었습니다.

경험하지 못하는 놀라운 세상보다 나은 길과 축복을 경험하는 것을 봅니다.

유대인의 예를 들지 않아도 사람의 가장 탁월한 삶의 지혜와 능력은 성경,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국에 나온지 두주가 지납니다. 

한국은 너무나 많이 발전한 나라임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것은 나라가 발전할수록 예수님을 묵상하는데 둔하게합니다.

다들 세상에서의 삶은 좋아지는데 예수님에 대한 생각, 묵상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지 못하게합니다.

 

오직 교회에 관해서만 말합니다.

그냥 사람에 관해서만 말합니다.

그냥 세상관해서만 말합니다.

 

그곳에는 절대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생각하고 함께해야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생명입니다.

 

 

 

 * 나이지리아에서 사역하셨던 김영윤목사님입니다.

현재 청주에서 요양원 원장님으로 계십니다.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왔습니다.

반가운 얼굴 함께 만난다는 것은 정말 귀한 축복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만남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자기의 길을 소신있게 가시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