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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함과 인내

전능함과 인내

 

 

 

 

 

 

 

 

 

 

 

 

 

 

 

 

 

전능함과 인내(16:16- 40)

 

 

귀신도 아는 일을 사람은 모릅니다.

세상 사람이 아는데 나만 모릅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이익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아니 보여도 돈이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돈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16)

 

 

사람이 돈에 붙들리면 다른 사람이 귀신에 들리든,

다른 사람이 죽든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을 손에 쥐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편하면 됩니다.

내가 살면 됩니다.

 

 

사람이 돈에 전부를 걸까요?

돈은 전능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명예가 전능함으로 찾아온다면

명예 때문에 사람이 죽든 살든 상관이 없습니다.

명예에 전부를 걸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어떤 누구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나의 자존심이 나에게 전능함의 대표하는 모습입니다.

자존심의 기초는 나의 됨은 나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무례하게 하거나

나를 무시하거나 내가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절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귀신을 쫓아 냄으로 귀신들린 여인의 종이 자신의 전능함을 가질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나 자존심을 건드려 자신의 하나님됨, 나의 높음을 무시당한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세상이 전능함을 잡으려는 배경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지 않을까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세상에서 가치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전능함을 잡으려는 돈이나 자존심 명예 등등을 건드리는 사람을 근본부터 차단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을 관리에게 잡아다가 매로 치고 감옥에 보내버립니다.

 

 

그들이 진리를 행하든 어떻든 세상은 그것이 상관없습니다.

세상은 오직 자신을 세상에서 전능함을 드러내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이 자살을 할까요?

자신의 존재 가치,

자신의 전능함을 나타나지 못한다 판단될 ,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자살하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면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을 행복하게 됩니다.

 

 

아담이 창조될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아담에게 표현하셨습니다.

 

 

하와가 창조되었을 아담은 하와에게 세상에서 찾을 없는 놀라운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중에 뼈요 중에 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아 바로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도

아담은 하와도 자신과 동일시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신의 위치가 하나님의 위치이며

하와의 위치는 아담의 위치입니다.

 

 

그렇게 서로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 받는데

아담과 하와가 안에서 나오면 뭔가 될줄 알고 나와버렸습니다.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려니 흙이 되었습니다.

 

 

흙이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과 서로(아담) 통해 확인이 되는데

하나님과 서로가 아닌 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세상의 역사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존재를 세상의 것으로 채우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돈으로 자신의 존재를 채우려합니다.

명예로 자신의 존재를 채우려합니다.

자존심으로 자신의 전능함을 채우려합니다.

실력과 능력과 힘으로 채우려합니다.

 

 

바보들입니다.

절대로 채워지는데 채워질 알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수록 허전함만 더합니다.

 

 

그래서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세상은 눈을 가립니다.

오직 자신만 보게합니다.

진리를 봐도 보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의 전능함만을 채우려 하기에 그것만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늦게 진리를 보는 이유입니다.

자신 안에 갇힌 사람은 진리를 보고 들어도 그것이 나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둘째, 전능함을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장 세상적인 방법은 거짓말입니다.

 

 

사단이 사용한 최초의 방법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전능함을 위해 세상은 반드시 거짓말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단의 정체성은 바로 거짓입니다.

속이는 자입니다.

없는 말을 만들고 없던 일을 만듭니다.

 

 

오늘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은 없던 말로 바울 일행을 감옥에 넣습니다.

돈이 관련된 문제의 뒤에는 반드시 거짓이 찾아옵니다.

돈은 전능함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전능함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닌 자가 하나님처럼 살려면 거짓이 됩니다.

그래서 없던 전능함을 이루기 위해 거짓으로 찾아옵니다.

 

돈의 배경에

명예의 배경에

내가 뭔가 이루고자 하는 뒤에는 거짓이 있습니다.

 

 

그래서 욕망이 크고,

열정이 많은 사람의 실수 중에 자주 보는 실수는 거짓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여종에게 묶인 귀신을 쫓아 냈던 바울 일행에게 말은

성을 요란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20)

 

 

전능함을 이루고 싶은 사람일 수록 과장하고 부풀리고 사람들을 동요시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며 전능함에 대한 욕심입니다.

 

 

셋째, 욕심입니다.

 

 

전능함을 향한 사람의 마음은 욕심입니다.

이름이 전능함이 아니어도 사람의 성질은 욕심입니다.

전능함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은 욕심으로 살아갑니다.

 

좀더 가지고 싶고

좀더 누리고 싶고

좀더 높아지고 싶은 모든 것의 끝은 전능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지는 양상은 그냥 욕심입니다.

 

 

욕심의 본질은 자신만을 채우려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귀신에 들리든

다른 사람이 감옥에 가든

다른 사람이 진리에 있든 거짓에 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눈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향한 바울의 대응이 우습습니다.

그냥 얻어 맞습니다.

그냥 옷이 찢기고

그냥 매를 맞고

그냥 감옥에 갇힙니다.

 

 

그럴까요?
그는 어디를 가든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전능함을 나타내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내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그것이 목적인 사람은

그냥 하나님의 뜻에 따릅니다.

비록 세상이 자신의 옷을 찢고 세상이 때리고 감옥에 넣어도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그냥 따릅니다.

 

 

그것이 세상과 다른 우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능함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우리의 전능함을 추구하고 산다면 우리는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과 같습니다.

거짓에 매여있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증명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감옥에도

옷이 찢어져도

매를 맞아도

하나님의 전능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이 기쁨이고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바울일행은 감옥에서 하나님의 전능함을 보게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25-26)

 

 

같은 찬양을 하고

같은 기도를 해도 자신의 전능함을 드러내는 곳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신의 전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함을 찬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신들의 전능함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내기 위해 인내합니다.

 

 

역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무능하고 믿음으로 서있는 그분의 백성에게 보이십니다.

 

감옥에 지진이 나고 매인 것이 벗어집니다.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느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전능함을 스스로 증명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의 전능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함을 믿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하니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나의 힘으로 뭔가를 잡으려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나의 전능함과 하나님의 전능함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갈등하지 말고 일등하십시오.

 

 

믿음에 일등하면 하나님은 나에게 일등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에 일등이 되어야

나의 존재가 가치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세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돈을 잡게되도

명예를 잡게 되고

자존심을 좇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서로가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전능함> <인내>  싸움입니다.

나의 무능을 인정해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게 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