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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과 같은 말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거절>과 같은 말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거절> 같은 말은 <하나님의 >입니다(16:6 - 10)

 

 

길을 막으시면 가면 됩니다.

뜻을 펼칠 없으면 하면 됩니다.

허락하지 않으면 안하면 되고

보내지 않으면 가면 됩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우리는 구분해야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뜻인지 아니면 세상의 뜻인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6)

 

 

우리 삶에 우리의 뜻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일도 안풀리고 사업도 풀리고 공부도 힘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인양 생각하고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내가 뜻을 정하고 내가 길을 정하고 내가 마음을 정하고 갑니다.

중요합니다.

뜻을 정하지 않고 길을 정하지 않고 마음을 정하지 않고 가는 것보다

훨씬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귀한 것은 성령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거절에는 거절의 이유가 있음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은 거절이며 거절은 절망이며

절망은 소망 없음으로 인식하기에 우리는 거절을 힘들어합니다.

 

 

그것도 목숨걸고 달려온 ,

전부를 다해서 사명으로 믿고 길이 막히면 그것이 끝인것처럼 여겨집니다.

아닙니다.

내가 끝이라 생각이 하나님의 길이 열립니다.

 

자녀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가 막힐 ,

그것도 내가 전부로 여기로 달려온 그것이 막힐 우리는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는 내가 하나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길을 예비하고 내가 길을 준비하고 내가 길을 정했기 때문에

길이 막히면 인생이 끝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이끌림되고

성령으로 길을 나선 사람은 그냥 발을 털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목적은 그곳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곳에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이루고 싶은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곳의 의미를 너무 강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의 의미에 전부를 겁니다.

 

 

<그곳> <그일> 목적입니까?

아니면 그곳과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까?

 

그대로 곳과 일이 목적인 사람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 전부를 걸었고

<> 나의 미래가 살려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은 그곳과 일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일에 있습니다.

 

 

나의 ,

나의 일에 우리는 소망을 두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전부를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곳에 둡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성령이 말씀을 증거하지 못하게하심을 느낍니다.

전부를 걸고 왔는데,

나의 전부를 포기하고 왔는데

일에 생을 걸었는데 길이 막히는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그곳에서 전하지 못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복음을 곳에서 전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전하면 됩니다.

 

 

<그곳> 목적이면 우리는 < >때문에 절망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곳에 목숨을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에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어느 한곳도 바울이 목적을 곳은 없습니다.
로마자체도 목적이 아닙니다.

성령이 보내시기에 로마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성령을 따라 다닌 것입니다.

성령이 가자는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대로 바울은 공로가 없습니다.

그래서 못하게 하면 자신의 길이 막힌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곳에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갑니다.

 

미련을 버리고,

고집을 잠시만 버리면 성령의 뜻이 명확해 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도우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듯으로 인정합니다.

 

 

 

조금만 지나면 압니다.

길이 막히고

뜻이 좌절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백성,

성령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뜻을 보게 합니다.

 

 

조금만 지나면 됩니다.

조그만 순종해 보면 알게 됩니다.

 

 

바울의 삶은 그냥 성령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신을 벗은 삶입니다.

6절부터 10절까지 세번에 거쳐 성령, 예수의 ,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뜻이 나옵니다.

 

 

성령: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6)

성자: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7)

성부: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0)

 

 

사건을 두고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뜻을 보여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 앞에 바울이 행한 것은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세계 복음을 위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냥 떠라나하면 떠나고

서라하면 서고

가라하면 가는 것입니다.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뜻을 정하고

일에 목숨을 거는데 성령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무시합니다.

일에 걸리는 어떤 것도 용납이 안됩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뜻과 사명과 비전이 너무 확고한 사람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의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비전은 비전이 없는 것이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전이 아니라

그냥 성령과 동행하는 일상입니다.

일상이 우리를 세계복음화로 인도합니다.

 

 

문제가 뭡니까?

우리의 너무 강력한 비전과 뜻입니다.

나의 비전이 죽어야,

나의 뜻이 포기 되어져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집니다.

성령의 일은 흐르는 것입니다.

성령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한곳에 머무르려하고

자꾸 내가 정한 그곳에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비전,

뜻이 없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냥 성령께서 거절하시면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음을

믿으면 됩니다.

 

 

거절은 성령의 가장 강력한 간섭입니다.

거절속에 그분의 뜻을 가장 강하게 있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야

세상 사람이 알아줄 그런 일이 일어나야 그것만이 성령의 뜻만이 아닙니다.

거절속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뜻을 읽어야합니다.

 

 

곳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그곳은 성령 안이어야하고

우리의 일은 성령 안에서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전부를 합니다. ^^

코미디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자꾸 코미디가 됩니다.

성령이 안에 오셨는데 우리는 자꾸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데

자꾸 나를 전하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영적 아시아에 있고 싶어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곳이 아시아입니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이 아시아입니다.

그곳에 일에 전부를 걸지만 성령은 아시아에 마음이 없습니다.

 

 

바울이 것은 그냥 거절할 떠날 있는 마음과

잠시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면 성령이 마무리 하십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만

나와 상관없이 삼위 하나님은 하십니다.

 

 

다만 내가 성령과 동행하는가 하는 것이 나에게 숙제입니다.

 

 

젊을 때는 내가 뭔가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크게 꾸라고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요셉을 인용합니다.

꿈꾸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는 소리입니다.

꿈은 나의 꿈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꿈에 내가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싶어 꾼적이 없습니다.

그냥 꿈이 꿔지니 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인생을 파십시오.

그것이 답입니다.

하나님의 ,

마게도냐에 복음이 전해지는 ,

꿈에 바울이 인생을 파는 순간입니다.

 

 

놀라운 순간이지만

꿈은 거절로 찾아옵니다.

 

 

요셉의 꿈이 거절과 아픔과 눈물의 세월로 찾아 왔듯이

바울에게도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일이

 

<거절> 찾아왔습니다.

 

거절 속에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뜻이 있습니다.

거절 당하셨습니까?

많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꿈을 요셉의 삶에 심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꿈이 거절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살리기 위한 꿈을 바울의 삶에 심으셨습니다.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꿈이 바울에게 거절로 찾아왔습니다.

 

 

거절은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뜻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잠시 기다리는 인내와 믿음입니다.

이처럼 강력한 하나님의 뜻이 삶에 드러나는데

우리는 불평입니다.

불만입니다.

좌절이고 아픔으로 인식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거절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사랑을 몰라서입니다.

 

 

거절이 없는 인생은 한마디로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과 100%동일하지 못하는데

나의 길에 거절이 없음은 하나님의 포기 하셨든지

하나님의 나를 사용하지 않으시든지 중에 하나입니다.

 

 

거절을 감사하십시오.

사람의 거절은 아픔이나

하나님의 거절은 놀라운 세상을 향한 꿈이 있는 것입니다.

 

 

응답만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거절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거절> 같은 말은 <하나님의 >입니다.

 

 

 

 

 

 * 수빈이가 유치원 일년 수료 공연을 했습니다.

평소에 조용하던 아이가 춤에 노래에 실력을 맘껏 발휘했답니다.

사역지에 가는라 저는 참석을 하지 못했는데 다들 놀랐다는 소식입니다.

아이들 부모님들도 수빈이가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는 이런 피가 없는데 어디서 이런 피가 있는지 신기합니다.

 

무엇보다 일년 동안 건강과 안전을 지키신 하나님!

하나님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사진:서은빈)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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