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행16:1 - 5)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헤어졌습니다.
각자 갈 길을 갑니다.
서로가 상처고 감정의 상처로 사람을 버리고 함께하던 사람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함께할 사람을 또 붙이십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온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귀한 사역자입니다.
그런 사역자를 바울에게 붙이십니다.
하기야 시작부터 기적입니다.
사람을 돌로 쳐죽인 사람을 복음을 위하여 부르신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정의 문제로 함께하던 귀한 사역자와 헤어졌음에도
그럼에도 또 디모데라는 놀라운 사역자를 보내셔서 함께하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신비가 많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그런 놀라운 일을 하며
어떻게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 그런 귀한 일을 하는지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비와 기적를 운행하는 한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속에서 그 단어를 풀면 바로
<교회를 사랑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뛰어나냐로 우리의 형통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능력있느냐로 우리의 길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비록 과거가 문제가 많고
비록 능력이 없고
비록 감정적으로 처리를 잘 못하는 미숙함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복음의 동역자로 부르셨음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흠없고 완벽한 자를 부르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시고
흠 많고, 모나고,
모순 투성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을 부르셔서
그분의 일들을 완성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허물 속에서도 한가지를 보십니다.
교회를 사랑함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입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중심,
우리가 그렇게 결심하기로 작정한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길을 그분의 길과 같게 하십니다.
오늘 바울이 비록 마가 요한과 헤어졌지만
그의 중심에 한가지 놓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를 향한 뜨거움과 사랑입니다.
교회는 곧 예수님의 몸입니다.
바울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삶의 중심에는 교회와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와 함께하는 이유이고
비록 그가 마가 요한과 헤어지고 바나바와 헤어졌지만
성령께서 끝까지 그를 붙들고 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꾸 흠 없음을 찾습니다.
우리는 자꾸 사람들에게 완벽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목사에게도 선교사에게도 완벽을 요구합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역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정죄하고 판단까지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우리의 기준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흠 있는 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케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라는 <죄인 의식>과
<교회를 사랑함>입니다.
그래서 비록 바울이 예수를 핍박했고
마가를 용납하지 못했고
바나바와 싸우고 헤어졌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에게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것이 다 못나도 한가지는 있습니다.
방법이 잘못되고
인격도 문제고
사람과도 문제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쓰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숙이 필요합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런 자까지도 사용해야할 만큼
복음의 시급성을 말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시급성보다
복음의 보편성에 더 많이 치중합니다.
적어도 복음이 복음다워지려면 나름 자기 기준의 수준은 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복음은 율법이 아닙니다.
복음은 복된소식입니다.
그냥 소식입니다.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길을 여시고 만나게 하시면 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수준,
그 사람의 완벽,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냥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렇게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시급성>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를 기억해야합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2)
성령의 성격은 급하고 강함입니다.
성령의 시간성은 급함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강함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원하는 것은 성령이 나를 이끌어
나의 한계를 넘는 하나님의 강권적 이끄심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 버리는 것은
성령의 시간성 즉 시급성입니다.
<급하고 강한>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령의 시급성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가 문제가 있고
감정적 처리에도 아직 쓴 뿌리가 남아 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쓰시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바울의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과
성령의 급한 시급성입니다. >
우리는 늘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립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빼고 사역자에게 원하고
나에게 원합니다.
사랑을 뺀 완벽은 율법입니다.
급한 시급성을 뺀 성령은 이성과 합리로 결국 가게 됩니다.
쓴 뿌리가 있어도
허물이 많은 인격과 약함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너무 부족해도 주님은 사랑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너무 못나도 교회를 너무 사랑합니다.
교회 밖에 몰랐습니다.
교회가 집이고
교회가 모든 삶의 중심입니다.
교회를 위해 평생 방학 때 아르바이트도 다 포기했습니다.
남들 다 가는 여행 한번 못 갔습니다.
교회가 모든 삶의 중심이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왜 이 땅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셨는지.
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의 삶의 전부는 교회입니다.
삶의 이유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아마 하나님은 나를 지금껏 지켜오셨는지 모릅니다.
나의 능력보다
나의 실력보다
나의 힘보다 더 귀하게 쓰시는 이유이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이유라 여겨봅니다.
우리가 회복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를 하나 둘씩 주님께서 회복시킵니다.
마가에게 못다한 사랑을 디모데에게 베풀게 하시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교회를 사랑 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시고
나 자신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교회를 떠나 인생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교회가 아닌 전부로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을 만납니다.
아무리 가도 거기에는 길이 없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답입니다.
교회가 아니고는 내 인생이 회복되고 세워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대안으로 오직 교회를 주셨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킵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이라 할례를 받지 않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한 사람이라도 더 세우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모든 관심은 오직 하나,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 모든 환경도 자처합니다.
우상의 재물도 먹고,
유대인이면 유대인
헬라인이면 헬라인
어느 곳 어느 문화에서도 함께 그들과 지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회를 사랑함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각자 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의 마지막은 교회여야합니다.
교회가 아닌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중심은 늘 방황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고
생각지도 않은 길이 열리고
생각지도 않은 은혜 가운데 머무는 기적은
교회를 사랑함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급한 시급성을 알고 따르는 곳에 일어납니다.
* 저는 가난한 시골 교회 선교사입니다.
얼마 전에 조사를 해보니 각 교회들마다 고아가 80명 가까이 됩니다.
이미 장학금을 고아들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늘 가난한 그들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옆에 있는 Super Spar라는 슈퍼마켓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매일 1500-2000랜드, 한국 돈으로 25-30만원 상당의 제과 빵들을
매일 도와 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한 달이면 평균 600만원-900a만원입니다.
단골 손님인 저를 매니저가 잘 봤는지 요청에 주인을 연결해서 결정해 주었습니다.
내년부터라더니 지난주 화요일부터 물건을 가져가랍니다.
하루 분량이 엄청납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길을 여시고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부터 지금껏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생각하면 생각이 현실이 됩니다.
생각만 하면 길을 여십니다.
세상의 중심,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