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받은 이름(행11:19-30)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환난은 늘 환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스데반의 일로 환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환난은 다시 안디옥까지 주 예수를 전파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이 이루시는 방법은 다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환난을 지나 복음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기도는 늘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안을 위해서 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일하십니다.
세상에서 환난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환난을 하나님은 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환난이 아픔이지만 그 아픔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환난이 눈물이지만 그 눈물은 진주를 창조해 냅니다.
환난이 슬픔이지만 그 슬픔은 세상을 바꾸어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신다 했습니다.
환난 가운데 그들이 놓지 않은 것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환난 가운데서 주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그 환난을 통해 복을 주십니다 .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 복이 복이 되려면
환난 가운데 주 예수를 증거하는 일,
주 예수를 전하는 것을 그치면 안됩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를 전하는 일 이어야합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어야합니다.
성령의 목적도
하나님의 뜻도 다 주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에 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환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환난 가운데서도 주 예수가 전해지기를 소망하십시오.
그 일에 삶을 거십시오.
그것을 할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스데반의 일이 엄청난 환난입니다.
그런데 스 데반으로 사울이 바울이 되고
그 일로 복음이 안디옥까지 전파되괴
그 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비로소 받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서 바울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바울의 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환난중에 지켜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잘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는 중에도 포기 하지 말아아하는 것,
주의 손이 함께 하게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잘 사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편안하게 사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입니다.
편안하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입니다.
환난 중에 계신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픔 중에 계신 분들을 종종 만닙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위해 살지
어떻게 하면 더 복음을 전할지 아파하는 분들입니다.
지혜는 좋을 때,
별일 없을 때,
평안 할 때 주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큰 지혜는
환난 중에도 포기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지식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해야 사람들이 주께 돌아옵니다.
주의 손은 누구와 함께 합니까?
주께 마음이 있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입술에 있는 자입니다.
세상의 평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전부입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환난 가운데서도 주 예수를 전하던
안디옥 교회,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환난 중에 나온 말입니다.
환난 중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환난이 그 사람의 정체를 밟혀내 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
아픔의 터널을 지날 때
그때 자신의 정체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환난 중에 나온 진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신앙인도 환난의 골짜기를 지나보면
그 본질이 드러납니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같이 삼일 일을 같이 해보면 그 사람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밥 먹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환난이 올 때,
갈등이 올 때,
아픔이 올 때 그 사람의 그리스도인 됨이 나타납니다.
어떤 의미에서 환난이 없이 세워진 교회
핍박 없이 세워진 교회는 아직 교회의 교회됨을 알지 못합니다.
초대 교회의 기초는 성령입니다.
서구 교회의 기초는 합리와 이성입니다.
한국 교회의 기초는 환난과 핍박입니다.
한국교회는 피와 눈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눈물과 피의 시간을 지나온 교회이기에 눈물과 피의 시간을 지나면
그 본질을 명확하게 보게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물도 피도 없는 평화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진짜가 누구인지 가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환난의 시간,
개인적인 아픔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리스도인 됨을 증명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환난이 오고 아픔이 오고
눈물과 슬픔의 시간을 지 날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포기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며
주의 손이 함께하게 하는 가장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은 좋을 때 하나님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지내고 계시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아픔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님 되심을 증거하십시오.
눈물 속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증거하십시오 .
그것이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게 하는
주의 손이 함께하게 하는 돌파구입니다.
그래서 안디옥으로 파송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말한 유일한 것은
환난 가운데서도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했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23)
우리의 정체성은 환난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환난 중에 지키는 믿음,
그리스도인…
믿음을 지키다 받은 이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 받은 이름 야곱에서 <이스라엘>
인생의 좌절에서 주님으로부터 건짐을 받으면서 받은 이름 시몬에서 <베드로>
환난 중에 받은 이름 성도에서 <그리스도 인>…
우리는 죽음의 절망과
믿음을 지키는 핍박과
인생의 좌절과 눈물에서 우리의 참 이름을 찾아내고 얻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 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