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변화(행11:1-18)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내가 싫은 사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잘되면 싫습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면 어떤 좋은 일도 허락하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더구나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유대인에게 들리자 그들은 막 비난을 합니다.
복음을 전해지고 성령이 임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 나의 기쁨의 기준이 아닙니다.
내가 세운 기준에 따라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행하지 못합니다.
오늘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향하여 비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영혼이 구원받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싫은 사람과 베드로가 함께 먹고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난의 근거는 하나님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보다
내가 세운 기준입니다.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싫으면 싫은 것입니다.
내가 싫은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죽어도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뭘 원하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꿈 같은 것은 나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누구를 아끼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싫은 사람과 함께 먹기 싫고
내가 미운 사람과 함께 있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가 싫은 사람과 함께하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다 싫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나의 기준!
그것이 죄의 입구입니다.
나의 기준이 성령의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 성숙입니다.
나의 기준이 성령의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으면 다른 사람의 구원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형편이 나으면 다른 사람이 어려운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관심으로 바뀌는 것,
나의 관심이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바뀌는 것
그것까지는 다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기준을 포기하고
나의 마음을 열고
나의 닫힌 마음을 열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내 기준을 포기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내 생각을 포기하고 성령이 주시는 마음에 나를 던지는 것입니다.
함께 먹지 못할 사람,
함께 거하지 못할 사람과
내가 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을 내가 믿고 내가 잘 되는 것만 생각하니
요나가 됩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구원,
자기들이 받은 선택의 축복을
자기들 것만으로 가두려했습니다.
그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기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영적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실체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상이 임할 때 하늘에서 음식이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유는 내가 속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로부터의 거룩을 우리는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들,
하나님이 보내시는 영혼들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더럽다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속되다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나님이 아름답다 하는 영혼을 내 기준으로 더럽고 속되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십니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된 기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
성령은 초 자연적 기적을 주시는 분이기보다
잘 못된 우리의 기준과 생각을 바꾸십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의 기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여기는 나의 판단을
성령은 바꾸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를 그곳으로 이끄심이고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은
성령이 주시고 이끄시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
세상이 아니어야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
내가 아니어야합니다.
수 많은 순간마다
하나님은 내가 속되다 하는 그것을 보내십니다.
만나게 하십니다.
기회가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생각을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제한 하는 나의 잘 못된 기준과 닫힌 마음이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 기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
말씀의 뜻은 안 중요합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내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되는데 나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한 두명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준의 변화가 교회의 변화가 됩니다.
기준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가 됩니다.
내가 힘든 이유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나를 보니 그렇습니다.
그 기준도 세상이 주는 기준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보니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봅니다.
그래서 늘 나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가 기준인 세상에
하나님이 기준임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능력입니다.
무슨 능력을 구하십니까?
내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변화 되는 것
그 능력을 구하십시오.
그 능력 속에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 변화 되는 유일한 길은
나의 기준의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