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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억 하시는 두 가지

하나님이 기억 하시는 두 가지

 

 

 

 

 

 

 

 

 

 

 

 

하나님이 기억 하시는 가지(10:1-10:8)

 

고넬료입니까?

이방에 성령이 임하는 중심에 고넬료를 사용하십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삼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고 고비고비를 넘겨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에 성령을 처음으로 받는 중심에 고넬료를 사용하십니다.

고넬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 남달리 기억하는 가지가 있었습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4)

 

 

첫째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방법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말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기도 말고 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영어를 써야하고

줄루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줄루어를 써야 알아듣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해야 알아들으십니다.

기도 말고는 듣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2:24]

 

이것이 출애굽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신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의 소리,

고통의 기도를 들으시고 시작된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인자가 충만하여 사람의 소리에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성경에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기억하셨고

소리에 응답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반응하시는 분입니다.

들으시고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구제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10)

 

 

이방에 성령이 임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사용한 사람은 고넬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한 것은 그가 기도함으로 기억하셨고

그가 그의 가진 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십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 보여도 기도하지 않고 구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합니다.

기억하신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너무 중요한 신앙의 본질입니다.

 

구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의 무게를 달아보시고

무게로 우리를 깊이 사용하십니다.

 

 

고넬료인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고

천사는 말하고

기억의 내용은 기도와 구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

남을 돌아보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욥바에서 베드로를 통해 살아난 사람인 다비다라는 도르가가 살아난 이유를 아십니까?

도르가가 살아 났을까요?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그를 살려주셨을까요?

그것은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아서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9:36)

 

 

예수 안에 들어오는 방법은 선행과 구제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는 방법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들어온 사람의 평가 기준은 구제입니다.

 

 

한마디로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삶의 본질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일까요?

요셉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나요?

근본적은 하나님의 마음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의 모습은 자기를 위해 시간이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꿈을 다루는 법을 몰라 훈련을 받았으나

그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남을 위한 >입니다.

 

 

요셉은 어릴적 아버지의 명령인 형들이 있는지 보고 오라는 말씀에

어린 나이에  120키로가 넘는 길을 나섭니다.

그로부터 그의 삶은 남을 위한 삶으로 살아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총리가 되어도 그의 삶은 모두 남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의 삶은 우리가 결정해야합니다.

기도하고 구제하는 삶이 하나님이 기억하고

우리의 평가기준으로 삼으십니다.

 

 

마지막날 평가 기준은 간단했습니다.

작은 자에게

소자에게 한잔 대접한 것으로 하신다 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날 평가 기준입니다.

 

 

도르가를 살리셨던 이유도 그의 구제였습니다.

고넬료가 이방에 처음으로 성령이 임하게 되는 사람으로 사용되어진 것도

그의 구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위해 살지 않아야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섬기기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나를 위해서 삽니다.

나의 채움을 위해서 나의 배부름을 위해서

나의 이름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나의 것을 채우려는 것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

어렵고 힘든 사람들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속에 계십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돌보고

얼마나 먹이고

얼마나 마시우게 했는지를 기억하시고

그것이 나를 위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힘든 자들의 가슴에

힘든 자들의 기도속에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의 기도,

신음 하는 자들속에 계신 성령의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으로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와 구제는 가난한 자들

신음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출애굽의 역사는

그들의 신음소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음과 아픔과 눈물과 탄식을 아파하는지 기억해야합니다.

소리에 반응하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고

구제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사람은

한마디로 믿음이 없다고 하나님은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오직 기도와 구제입니다.

 

 

평생 열심히 사셨습니다.

기도와 구제가 아니면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모양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채우려는 기도와 열심은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결정적인 도움은

나의 기도와 구제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합니다.

 

 

아이들에게 기도를 구제를 가르치십시오.

기도를 모르고 구제를 모르고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돌볼 모르는 삶은

하나님이 기억조차 하기 힘든 삶입니다.

 

 

수십년의 신앙 생활에

기도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기도도 나를 위한 기도이고

신음하는 이웃의

아파하는 지체의 눈물에 구제함으로 돌아봄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로 대화하시고

구제로 평가하십니다.

외에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했던 말씀이 말입니다.

 

불법을 행한 자드립니다.

능력도 있고 힘도 있고 권세도 있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픈 자들의 신음도

아픈 자들의 눈물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말씀의 시작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우리는 율법도 모르고 복음도 모릅니다.

다만 내가 높아지고 내가 받는 것에만 미쳐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꾸 열매를 말하는데 우리는 자꾸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기적과 권능을 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것은 기도와 구제입니다.

한마디로 대접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것 만큼 내가 대접할 하나님의 기억하신바가 됩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 밖에 있을 때는 마음대로 사십시오.

믿음은 내가 가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기억에 남아야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치 있게 사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 드롱콥 교회입니다.

오늘 사진을 올린 것은 이교회의 구제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교회는 미들버그라는 지역에서 25키로 떨어진 마을로 전기도 없고

물도 공동 우물을 쓰는 낙후한 지역입니다.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지역이라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자기 먹을 것도 없으면서 구제 헌금 구좌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헌금은 따로 떼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구제금을 사용하는 구좌가 따로 있습니다.

자기들도 살기 어려운데 남들 도와주려고 작정하고 아예 구좌를 따로 만들고

헌금내용을 분리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성경이 원하는지,

어렵지만 예수를 믿는 본질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살아갑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가난이 거짓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거짓은 나만 살려는 욕심이 만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열매를 원합니다.

열매는 선행이고 구제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기적과 능력과 권능으로 인식하니

자꾸 세상에 있는 교회가 이상한 곳으로 갑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말씀의 본질을 알고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