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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의 섭리

한 발짝의 섭리

 

 

 

 

 

 

 

 

 

 

 

 

 

 

 

 

발짝의 섭리(9:32-10:1))

 

 

고민은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귀한 일을 할지 고민 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날이 우스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평범한 날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러나 평범은 하나님의 비범을 향해가는 징검다리입니다.

 

 

베드로는 지금부터 곳에서 일을 벌입니다.

첫째는 룻다입니다. (32)

 

그런데 거기에 애니아가 중풍병으로 년이나 침상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중한 정도를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심을 선포하니 그가 나았습니다.

그런데 애니아의 나음으로 룻다와 사론이라는 넓은 지역의 사람까지

그의 나음을 보고 주께로 돌아옵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35)

 

 

베드로는 그냥 전도하다 룻다를 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어떤 일을 벌이실지 모를것입니다.

그냥 룻다를 갔고 애니아를 고쳤다고 정도로 생각 것입니다.

아닙니다.

 

 

둘째는 욥바입니다. (36)

 

욥바는 룻다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38)

베드로는 여제자 다비다라는 도르가가 죽어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인 상태로

초청을 받고 그에게 가서 도르가를 살려냅니다.

그리고 일을 통해 욥바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됩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42)

 

 

베드로는 전도를 다녔고 룻다를 갔고 거기 일로 사론의 사람까지 주를 믿게 되고

룻다와 가까운 욥바에서 사람이 죽고 그를 초청함으로 욥바에서 사람을 살리며

주를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인 사람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일까요?

물론 사람의입장에서 그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사명은 사람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방에 성령을 전하는,

이방인에게 성령임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도록하시는

하나님의 징검다리 사역에 참여하게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베드로가 어디로 가게 됩니까?

가이사랴입니다.

10 1절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10:1)

 

 

거기서 결국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역사의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 기적과 역사를 가지는 사건이

지금 고넬료를 통한 가이사랴에서 일어납니다.

 

 

가이사랴를 향하여 가는 징검다리가 바로 룻다였고 욥바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장소와 어떤 사건을 다음의 위대한 일을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뜻하지 않게  만난 사람,

오늘 뜻하지 않게 가게 장소가

사람을 아름답게 사용할 징검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에 성령을 임하게 하는 곳까지 가야합니다.

그곳이 가이사랴인데

그곳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룻다에서 애니아를 고치게 하고

욥바에서 도르가를 죽음에서 살려내는 기적을 보이십니다.

모든 지역이 자연스럽게 인도되어지는 장소입니다.

 

 

룻다에서 욥바에서 가리사랴까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내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냥 앞에 보이는 발에 최선을 다하는 고침과 치유와

성령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나를 통해 하시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바로 가이사랴로 가려합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은 받으면

바로 적진 가운데서,

세상 가운데서 놀라운 기적을 보이고

일을 일으키려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은 사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를 만나고,

아나니아를 통해 성령을 받고

바나바를 통해 사도들과 제자들과 교제를 하지만

결국 그는 다소 그의 고향으로 보내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뭔가 준비가 되었다고 바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룻다와 욥바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이사랴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역사를

나를 통하여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봅니다.

룻다를 지나지 않고 욥바도 지나지 않고

가이사랴를 가려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도 고치는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생명을 건져내는 훈련도 받아야합니다.

사람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

생명을 건져내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

무슨 꿈을 꾸고

무슨 위대한 일을 하겠다고 설치는 것은

망나니입니다.

그냥 칼을 들고 휘두르다 걸리면 사람 죽이는 꼴입니다.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세우기 위해

아나니아와 바나바를 사용하여 징검다리 인생을 살게 하시듯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징검다리의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룻다에서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십시오.

욥바에서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십시오.

그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가이사랴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환상에 빠집니다.

예수살렘에서 룻다 없이 욥바 없이 바로 세상의 한가운데인

가이사랴로 가려합니다.

아닙니다.

 

 

룻다를 지나야하고

욥바를 지나야합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를 보아야합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룻다에서 이루어진 일로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욥바에서 이루어진 일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나를 통해 넓은 곳으로

많은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당신이 거한 지금 그곳이 룻다입니다.

당신이 만난 사람이 애니아입니다.

당신이 거한 사람과 장소가 이후 가이사랴로 가는 징검다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유대에서 바로 땅끝으로 가지 않습니다.

유대를 지나고 사마리아를 지나고 그리고 땅끝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소에서 지내는 세월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을 훈련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룻다와 욥바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바울의 1,2,3 전도 여행을 지나야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나의 룻다 나의 욥바에서의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이사랴로 보내기 위해 룻다로 오게 하셨음을 믿어야합니다.

길이 곤하고

사역이 피곤하고

사람 때문에 일때문에 마음이 무너져도

이곳을 지나야 욥바로 가고

은혜가 기다립니다.

욥바를 지나면  놀라운 성령의 은혜가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룻다를 지나고 욥바를 지나 가이사랴로 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 발짝의 섭리>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보면 당시는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그렇게 지내고 거기서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나보면 그곳이 나의 룻다였고 욥바였습니다.

지금도 어느 룻다와 욥바에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가이사랴를 향하여 가고 있고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함을

지나온 룻다와 욥바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가이사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누구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가이사랴는 오늘 사람을 치유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통해서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일에 전부를 거는 것이 오늘 내가 룻다를 지나고 욥바를 지나면서

해야 유일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 거하고

그래서 나를 드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룻다와 욥바를 지나는 베드로의 삶은

자기의 것을 어떻게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자기에 매이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신을 벗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합니다.

 

 

신을 신고 자기 일하고는 징검다리를 지나지 못합니다.

부활 베드로와 부활 베드로의 차이는

신을 신느냐 벗느냐의 차이입니다.

 

 

 

오늘도 신을 벗고 주어진 사람과 장소에서

사람을 치유하고 영혼을 세우는

신을 벗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