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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울들

나의 바울들

 

 

 

 

 

 

 

 

 

 

 

 

 

 

 

 

 

나의 바울들(7:1-60)

 

예수를 문제 삼았습니다.

거짓 증언의 핵심은 예수를 문제 삼았습니다.

이때부터 스데반의 성경을 관통하는 말씀을 사람들 앞에 증언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지금 스데반 앞에 있는 사람까지 역사를 관통하고,

성경의 핵심,  지나온 역사의 핵심을 한마디로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선지자를 거스르고 율법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거스르고 예수를 죽이고 성령을 거스르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을 주어도

거스르는 것이 인간이 취한 삶이고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결과로 오늘도 사람들이 스데반 앞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곳까지

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역사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거스르는 인간을 끝까지 품고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믿음의 길을 내고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예수님의 오심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역사를 섰지만

하나님 모든 것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길을 내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인간의 역사는

성령을 거스르는 역사를 씁니다.

스데반을 죽입니다.

 

 

 

아벨을 죽이던 세상이 모든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이고

요셉을 죽이려 하던 세상이

애굽의 모든 아들을 죽이려 했고

세상이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을 죽인 그들이 다시 스데반을 죽입니다.

 

 

기억해야합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의인을 죽이려하던 세상은 지금도

의인의 잘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가운데 살때는 세상적으로 살만했는데

의인의 길을 때는 얼만 세상이 죽이려 달려드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환대하고

세상이 우리를 환영하고

세상이 우리를 의의 길로 가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면

미워하고 욕하고 거짓으로 거스려 핍박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1-12)

 

 

스데반도,

제자들도

사도들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핍박에도

매맞음에도

목숨의 위협에도 예수의 이름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핍박으로 복이 되고

그들의 욕으로 기쁨이 되고

그들의 박해로 상이 되고

그들의 거스림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아벨을 죽이던 세상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죽이려던 세상이 그대로입니다.

애굽의 아들들을 죽이려던 세상은 악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은 더욱 거세게 달려듭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여 성령이 오셨으나

변한 것은 우리이지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이 두려웠고

세상이 힘들었고

세상이 아팠지만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변했고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영혼이 사람이 것입니다.

 

 

세상이 잘해 줄것이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환대 것이라 믿지 마십시오 .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눈이 변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세상 사람들 죽이려 달려들때 그의 영혼의 눈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것입니다.

 

 

어느것이 크게 보이냐의 차이입니다.

세상이 크게 보이면 세상을 따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이 크게 보이면 성령을 따릅니다.

 

 

세상의 역사는 결국 거스르는 역사입니다.

하나님만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을 거스릅니다.

 

 

말을 하면 죽이려 달려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렀다고 말해야 죄인이 인정되고

죄인이 인정되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의 은혜,

세상보다 놀라운 성령의 은혜가

시와 대를 좇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 없이 살면 두려움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지 못하면 무엇을 해도 세상을 이기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의 서신 것을 봅니다.

그것이 보여야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에 묻혀 살면 세상도 나를 건드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을 가면 세상은 우리에게 시비를 겁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성령 안에 거해야만이 세상보다

성전보다 ,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와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인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힘으로 거하게 됩니다.

 

 

 

아픔이 많은 성도들을 만납니다.

힘듦을 경험하는 친구들을 만납니다.

가족이 아프고

병이 들고

세상이 힘들게 하여 마음에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두려움입니다.

돌을 들고 금방이라도 죽일것 같은 기세로

우리를 향하여 달려드는 세상에서

성령의 충만을 기도합니다.

성령 안에 거하면

감옥에서도 잠을 자고

성령 안에 거하면 돌을 사람들 앞에서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지금껏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오.

세상보다 하나님 자신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돌을 치는 세상을 향하여

 

 

"주여 죄를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원망이 아닙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변한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고

영혼이 변하고

심령이 하나님의 ,

성령과 연합한 것입니다.

하나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마지막 마음입니다.

함께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 안에 거하도록

성령 안에 그들을 용서하도록…

 

 

그래야 나의 기도를 통해 죄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나보다 위대한 <사도 바울>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의 순교적 ,

나의 순교적 기도,

나의 순교적 마음 안에

새로운 <사도 바울> 탄생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나로 끝이라고 여기는 욕하고 죽고

기도대신 욕해야합니다.

원망해야하고

같이 미워해야합니다.

 

 

그러나 나의 순교적 삶을 통해

위대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그것이 나의 <바울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을 통해 통해 야곱이 태어나고

모세를 통해 광야 교회가 태어나고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가 태어나고

라합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고

다윗을 통해 솔로몬이 태어나고

예수님을 통해 제자들이 태어나고

스데반을 통해 <사도 바울> 태어나고

 

<사도 바울> 통해 위대한 복음의 길이 열림으로

세상에 많은 새로운 <바울>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

성령의 목적,

하나님이 나에게 아픔을 허락하시고 핍박을 허락하시고

눈물을 허락하시는 것은

새로운 <바울들> 탄생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법입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은 세상에서 새로운 <바울들> 만드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법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복을 받았지만 <바울> 없는 나의 인생입니다.

 

 

인생의 좋을 때는 것도 없지만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은

아픔을 통해서도

생명을 내어 놓는 순간까지도

나의 <바을> 만들어내는 성령의 일하심에

기꺼이 나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

나의 <바울들>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나를 통해 일하시고 싶은 뜻입니다.

 

 

 

 

 

 *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에서 찬양의 밤이 있었습니다.

오기스 교회 찬양팀이 참석을 했습니다.

나의 <바울들>입니다.

 

선교사의 눈물과 아픔을 통해 <나의 바울들> 세워지는 ,

그것이 성령의 뜻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

나의 바울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면류관>으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