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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길 때

문제가 생길 때

 

 

 

 

 

 

 

 

 

 

 

 

 

 

 

 

 

문제가 생길 (6:1-7)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문제를 봅니다.

그러면 문제는 문제를 만듭니다.

 

 

사도들이 문제가 생기자 문제를 보지 않고 본질을 봅니다.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재정을 받아 구제를 하는데

헬라파 과부들의 구제에 소홀한 모양입니다.

 

 

일이 일어나자 사도들은 그래 열심히 해야지,

내가 열심히 안해서그래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노력을 하지 않아서

사람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안해서가 아니라

나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아서입니다.

 

 

나의 본질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문제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풀면 답이 없습니다.

문제는 본질에 충실하지 않을 나타납니다.

 

 

문제가 나올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할 방법을 찾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들이 구제하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집사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본질을 회복하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 위해서

일곱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집사를 세운 것이 아니라

본질을 잡기 위해서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들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가 자꾸 요구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해주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사주고 먹여주고

요구하는 대로 해주는 것으로 문제를 풀려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아이의 문제는 아이가 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입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데

부모는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요구하는 필요를 사주고

돈으로 해결을 한다면 아이와 가정에는 답이 없습니다.

 

 

답은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에 충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헬라파 과부들의 구제가 빠지는 것을 보고

구제를 채워야겠다,

내가 신경을 써야겠다라고 문제를 문제로 보고 답을 접근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나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잡아야겠다,

기도해야겠다 그렇게 나옵니다.

 

 

문제를 문제로 풀지 않아야합니다.

문제는 본질에 접근하면 해결이 됩니다.

 

 

집사는 구제를 잘하기 위해서 세운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 세운 사람들입니다.

 

 

만약 구제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건이 경제에 능하고

셈에 능하고

평등하게 구제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조건인데

전혀 반대입니다.

 

 

집사의 조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만약 구제하는 문제를 푸는 것이라면 무슨 이런 어려운 조건이 필요합니까?

그냥 앞에서 말한 조건이면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채우고 말씀을 향한 본질에 충실 하려면

말씀과 기도와 함께 가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이어야합니다.

그것이 문제인 구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제사장의 무리 중에도 예수를 믿는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의 핵심은 기도와 말씀이 중심입니다.

기도와 말씀 이상이 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교회 안에는 문제가 나옵니다.

문제의 해결은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구제를 안해서가 아닙니다.

교회가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교회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기도할 자가 기도하지 않고

말씀에 전무할 자가 말씀을 떠나서 그렇습니다.

 

 

교회가 기도와 말씀이 제대로만 이루어져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들을

문제를 문제로 풀려고합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기도와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일을 하기 위해 집사도 필요하고

조직도 필요하고

시스템도 필요하고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구제를 많이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흥황하지 않는 구제는 결국 문제안에서 허우적 거리게 됩니다.

선교도 좋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가 없는 선교는

결국 문젯거리가 됩니다.

 

 

말씀으로 방향을 잡고

기도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구제나 선교나 다른 어떤 좋은 일도

교회는 기도와 말씀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면

결국 문제의 꼬리잡기 놀이가 됩니다.

 

 

목사가 기도하지 않게되는 시스템,

목사가 말씀에 전무하지 않는 바쁨이

교회를 계속 어렵게 만듭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어서

어디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기회가 되고

문제가 나은 길로 나아가려면

 

 

본질을 붙잡는 것이 답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전할 자는 일에 목숨을 걸고

구제하고 나눌 자들은 일에 최선을 다할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시간보다

다른 어떤 일을 하는 시간보다

기도가 많아야 하고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야합니다.

 

 

시간이 지나보면 그것이 답임을 알게 됩니다.

요즘 사역자들,

요즘 교인들은

자꾸 다른 일에 바쁩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움이 사라지지 않는 같습니다.

 

 

일할 사람은 일하게 하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구제보다

선한 일보다

먹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보다

기도하고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수가 많아질 같습니다.

문제는 본질을 잡지 않으면 문제는 문제를 낳습니다.

본질을 잡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들의 탁월함은 문제를 만나면 본질을 붙잡는 힘입니다.

그것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힘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