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죽음(행5:1-11)
우리의 신앙생활 중 가장 조심해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 있으면서 성령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있지 않으면 나타나는 증상은
첫째, 남들이 하니까 나도합니다.
남들이 헌금하니 나도합니다.
요셉이라는 바나바가 물질을 내놓고 헌금하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보기 좋아 위로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4:36)
사도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모습이 좋았고,
또 은혜 받은 사람이 소유를 팔아 내 놓는 모습이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는 길이라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한다고 나도 하게 되면 결국 본전 생각이 납니다.
다 드리지 않고 일부를 숨깁니다.
땅을 팔았으니 적지 않은 돈이고 그 돈의 일부를 숨겼습니다.
누가 팔라고 한적도 없습니다.
누가 그렇게 소유를 내 놓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남들 하는 것을 흉내 내고 사람들로부터 얻는
칭송 즉 이름을 내고 싶은 욕심이 결국 문제를 만듭니다.
남들 하니까 나도 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남들하니까 하게 되면 결국 망합니다.
남들하니까 하는 본심은 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을 상대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문제는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영안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임한 공동체 안에 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공동체의 주체입니다.
우리의 착각은 자꾸 사람 을 충족하고
사람을 만족시키고
사람만 어떻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람이 다시 영원이 되었습니다.
그 영원인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고
그 존재하는 하나님을 대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성령이 아니라 사람을 아직 상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흙입니다.
흙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성령의 공동체 즉
천국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이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의 거짓말은 곧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신이 임한 공동체 안에
하나님을 대하지 않고 사람으로 존재하는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으로 존재하기에 사람을 대합니다.
거기에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좋을까요 나쁠까요?
좋은 사람에게는 좋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쁩니다.
무슨 말인가?
철저히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복이지만
하나님을 대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임재는 곧 죽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상대하는 사람입니다.
영원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입니다.
그것이 영원입니다.
그런데 영원이 된 존재가 여전히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말고 거짓과 행함은 곧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이 일로 온 교회가 생각을 달리합니다.
두려워합니다.
무서워합니다.
우리는 사람이지만 성령 안에 거하는 존재고
성령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게됩니다.
마치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죄가 있으면 바로 죽음을 면치 못하던 것과 같이
성령이 임함에도 성령을 대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흙으로서의 삶을 살면
죽음 가운데 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구요?
하나님을 바보로 아십니까?
하나님은 믿음의 통로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지식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대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성령 앞에 행하고 말하고 사는 존재가
성령 안에 행하고 말하고 사는 존재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셋째, 악한 것에 마음이 하나됩니다.
부부는 같으면 망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악한 것에 마음이 하나되어 망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악한 것에 마음이 하나되어 망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악한 것에 마음이 빨리 하나가 됩니다.
이유는 자신의 욕심입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어찌하여 함께 꾀어"(9)
악한 것에 마음이 함께가 됩니다.
성령이 떠나면 악한 것에 하나되는 것에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때 그랬습니다.
가나안 정탐을 갔던 10명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악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에 얼마나
마음이 빨리 하나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악한 것에 한 마음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안심하게 합니다.
같이 보고하고
같이 나쁜 짓을 해도 안심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함께 있다고 안심하면 망합니다.
내가 함께 있는 그 길이,
남들 다하는 그 일이 하나님의 길,
성령의 길이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해야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이유는
함께임에도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는 남편,
그렇게 믿는 아버지
그렇게 믿는 목사님,
그렇게 믿는 선교사와 함께 하는 그 길이
성령의 눈으로 보면 틀린 길 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 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헌신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바보가 아닙니다.
헌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헌신 한다면 성령 안에서 자발적 헌신이어야합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헌신은 자발적이지 않고
억지로 하는 헌신입니다.
그래서 속이고 자신의 것을 늘 챙기는 악함이 있습니다.
온전한 성령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의 이름의 분량을 남겨둡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해 늘 숨겨 놓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는
<기꺼이>가 되어야합니다.
기꺼이가 되지 않으면
헌신과 섬김과 베풂이 결국 본전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헌신과 섬김과 베풂이 결국
자신에게 죽음이 되어 돌아오게 합니다.
기꺼이 드리지 않는 헌신은 죽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자발적 헌신!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하는 비결입니다.
둘째,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대해야합니다.
사람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기 위해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안에 머물려합니다.
사람과만 상대하려합니다.
망합니다.
가장 빨리 망하는 지름길은 사람까지만 상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괜찮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으로 간음까지가 우리의 기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괜찮으나 하나님보시기에 까지가 우리의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성령 안에 거한 다는 것은
성령을 의식하고 행하고 말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성령 앞에 행하고 말하는 삶이 없습니다.
그러면 행하는 모든 것이 악이됩니다.
헌금을 숨기고,
사람에게 거짓말하고
결국 성령에게까지 거짓말 하는 존재가 되어
성령이 함께 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준!
사람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그분 앞에서 말하고 행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마음을 같이 해야합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의 세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행2:43-47)
첫째는 함께 먹는 것입니다.
둘째는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셋째는 함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성령 안에 마음을 같이하는 참 모습입니다.
상세하게 세가지를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쓰고 싶은데 글이 길어져 부담입니다.
왜 이것이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의 특징인지 기회 되면 한번 올리지요.
성령 안에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같이 먹지도,
같이 나누지도,
같이 찬양하지도 못합니다.
이 세가지 특징의 근원은
예수님의 광야 시험,
아담의 선악과
베벨탑 사건까지 다 포함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같이 해야합니다.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
임마누엘의 역사에 반대로 가는 삶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적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사함을 얻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얻지 못하는 결정적 증거가
오늘 사건입니다.
성령!
오직 두길입니다.
영원과 죽음!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 전체 사역자 미팅을 했습니다.
올해를 반성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도사 몇 명과 사모들이 빠졌지만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랑스런 교회의 주역들입니다.
남아공에서 사역하는 우리 사역자들입니다.
자랑스럽고 귀한 사역자들입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사역하고 삶을 던지는 사역자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아프리카가 아름답게 영적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