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행3:1-26)
성령 받고 난 후 베드로의 설교가 놀랍게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그 설교의 핵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성경은 이름을 너무 중요하게 말합니다.
아담이 이끌려온 생명들에게 부르는 것이 그 이름이 됩니다.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 이름이 그 생명의 존재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도 이름을 붙여줍니다.
하와입니다.
이름 따라 사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주시고 이름을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이름입니다.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됩니다.
큰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로 바뀝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입니다.
이름은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것이 이름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증명을 오늘 3장에서 설명합니다.
수많은 초대교회의 기적 가운데 유독 베드로의 설교후에
오늘 사건을 기록합니다.
바로 앉은 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반대를 금과 은으로 이야기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6)
예수의 이름의 반대는 은금입니다.
세상 사람은 은금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러나 은금은 생명을 살리고
아픔을 회복하고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생명과 아픔의 회복
그리고 자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이 성령이 임하고 난 후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
그리고 그 증명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낫는 기적을 기록합니다.
베드로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름,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일로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 이 일을 놀라워하자
베드로가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설명하며 결국 예수의 이름을 믿고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16)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이름이 권세입니다.
이름이 힘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이름의 권세라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한번 더 기록하고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이름의 싸움
열심히 하면 안됩니다.
열심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힘을 키웁니다.
열심의 마지막은 자기이름입니다.
우리의 권세가 뭔가요?
우리는 무엇을 믿나요?
하나님이 능력을 어디에 두셨나요?
우리가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나요?
그렇습니다.
< 예수의 이름 > 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영생을 얻고 자녀가 되고 세상에서 권세를 얻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예수가 아니라
< 예수의 이름 > 입니다.
이름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전부를 두셨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을 때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믿는 만큼 질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보다 더 큰 믿음이다.
하나님만큼이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힘을 믿고,
하나님의 복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그 능력과 힘과 복은 예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 복음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뭔가?
어떤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에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아픔과 힘듦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겨우 기도 끝에 주문 외우듯이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만
실제 능력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복잡한 기도나,
오랜 기도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3:16절의 복음의 핵심을 말씀하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에 주신 것은 < 독생자의 이름 > 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잊었습니다.
이름이 권세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
얻지 못함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고 이름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요14:13]
이름 때문에 핍박을 당합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눅21:17]
이름 때문에 어린아이를 섬기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눅9:48]
사람들이 믿은 것도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요2:23]
심판은 그 이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성령은 예수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리고 이름으로 응답을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그 이름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사명을 주시고 사람을 부르시며 세울 때도 그분의 이름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은 오직
< 그리스도 예수 > 의 이름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영광스런 이름 < 예수 > 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 임마누엘 > 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어떤 병도,
어떤 아픔도,
죽음도 구원하시는 분 예수님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모든 세상의 약함에서 구원하시는 분 예수!
세상이 원하는 것은 예수 외에 다른 이름입니다.
자기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자기 이름이 최종 목적입니다.
거기에는 능력도 평안도 없습니다.
바벨탑의 핵심은 자기의 이름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창11:4)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이름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곳에 참 은혜가 있습니다.
참 능력이 있습니다.
응답이 있고,
평안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에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 외에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 예수의 이름 > 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베드로는 겨우 낫게 해주세요 하고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명령이어야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명령이어야합니다.
기도는 대화와 명령이 같이 갑니다.
하나님과는 대화지만
세상을 향하여 명령입니다.
대화가 깊어져야하지만
명령의 능력,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루게릭 병이 나았습니다.
전라북도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증을 반납하고
남아공에서 선교하십니다.
그 집 아이들 명령하여 키가 자라도록 매일 기도했답니다.
기도한대로 남자아이 여자아이 다 키가 크답니다.
기도한 대로 명령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간증한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의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고도
조심조심 숨어다니는 우리의 약한 믿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하심이 우리의 영혼에 비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힘,
예수의 이름입니다.
명령하십시오.
세상이 들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