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것 (행2:42-47)
예수 믿는 것이 뭘까요?
신자로 산다는 것이 뭘까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 뭘까요?
그건,
먹을 때 같이 먹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이 나눠주고
그리고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같이 먹고
같이 나누고
같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뭘까요?
백성들이 칭송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고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합니다.
같이 먹지 않고
나의 필요를 먼저 채우려하고
한 마음으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광야 백성의 특징은
같은 물을 먹고
같은 만나를 먹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같이 먹고
같이 나누고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것이 에덴의 회복입니다.
그것이 아담의 원래 모습입니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이 먹지 않게 되고
같이 나누지 않게 되고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니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됨의 법칙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 보이고
교회의 숫자가 많이 모이고 하더라도
함께 먹고
함께 나누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입니다.
성령이 임한 곳에는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되지 않는 성령의 역사는 가짜입니다.
같이 먹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지 않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그냥 아픔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함께 먹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예수를 믿는 것은
함께가 사라졌습니다.
오직 나입니다.
기도도 나입니다.
신앙도 나입니다.
교회도 나입니다.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교회입니다.
세상이 교회의 영향을 받아야하는데
교회가 세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만 잘 되면 됩니다.
나만 잘나가면 됩니다.
함께 먹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고 채우는 일은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
예수 믿는 것의 본질은 점점 멀어져 갑니다.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구원입니다.
그럼 구원 받은 후에는 어떻게 사는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같이 먹고
같이 나누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함께 먹고
함께 필요를 나누지 않는 곳에는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찬양이 아니라 노래입니다.
유행가를 부르는 것과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과 같이 됩니다.
함께 먹고
함께 나누는 일이 교회의 본질이고
그런 사람들이 드리는 노래가 찬양이 됩니다.
옆집,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이 일에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함께 지내는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지내는 사람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예수 믿음은 가짜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면서
전도한다,
선교한다는 다 가짜입니다.
예수를 믿는 삶의 본질은
<소자에게 행한 것>입니다.
소자의 법칙입니다.
옆집에 사는 형제와 함께 먹고 나누십시오.
나의 형제 자매와 필요를 채우십시오.
부모 형제에게 내 삶의 물질과 돈을 나누십시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45)
함께 먹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내어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함께 먹는데
자시의 재산과 소유를 내놓지 않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수 없이 봅니다.
먼 사람은 챙기는데 가까운 사람,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지내는 형제 자매에게 내 소유와 재산을 내 놓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짜입니다.
함께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지체의 필요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 지위가 올라가고
내가 유명해지고
내가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다면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수록
내 놓는 것이 많아지고
내 재산,
내 소유가 자꾸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예수 믿는 삶의 모습입니다.
기도해서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함께한 사람과 먹고
내 소유와 재산을 나누어 먹이고
그들의 필요를 살펴 내 재산과 소유를 나는 것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봅니다.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을 봅니다.
설교를 기가 막히게 하고
교회의 모든 일에 참여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
함께 먹고
함께 필요를 나누고
형제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물질은 내 놓고
자신의 재산을 내 놓고
시간을 내 놓고
땀을 흘려 음식과 필요를 채우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쌓는 삶이 아닙니다.
풀어 놓는 삶입니다.
내가 필요를 위해 재산과 물질을 내 놓지만
하나님이 그 내 놓은 자리,
내 놓은 재산을 다시 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해야합니다.
설령 하나님이 채우지 않아도
예수 믿는 삶의 본질을 따라야합니다.
그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원하는
믿는 자의 삶입니다.
예수를 믿고
세상의 논리와 예수의 논리가 함께 섞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잘되기 위해
예수 믿고 복 받는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아지기 위해
세상에서 주인 되기 위해
세상에서 잘 나가기 위해
예수 믿고 복 받는 길을 택합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 나가기 위해
재산도 물질도 나누고 함께 먹고
필요를 위해 나누는 일은 없습니다.
아니 더 악하게 모으고
더 악하게 자신의 것만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많은 목사님을 만납니다.
많은 선교사님을 만납니다.
귀한 교회의 직분자를 만납니다.
그런데 사역은 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능력 있는 사역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함께 먹고
함께 필요를 나누고
함께 자신의 재산과 물질을 좀 나누면 좋겠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눕니다.
어렵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럼 다들 한마디 합니다.
"하나님이 좋은 길을 예비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복을 주실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유히 자신의 사역지에 가서
자신의 가정에 가서 자신들의 것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만나게 한 사람,
하나님이 어려움을 알게 한 사람과 함께 먹고
나의 재산과 물질을 그들의 필요를 위해
정성으로 내 놓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말고
자신이 그들에게 응답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왜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응답이 되지 않고
늘 다른 사람,
늘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장한 믿음 없음을 증명하십니까?
오늘 성경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경험하고
엄청난 일을 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먹고
함께 나누고
함께 찬양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간단합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47)
백성에게 칭송 받을 때 하나님이 구원 받는 사람의 수를 더하십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그들이 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뭘 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한 형제,
함께한 지체들과
그냥 함께 먹었습니다.
그냥 그들의 필요를 위해 내 재산, 내 물질을 내 놓았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삶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전도하십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도하십니다.
전도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함께 먹고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재산이 늘고
물질이 느는 것이 부끄러움이라 여겨야 합니다.
미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늘 내가 드리는 것보다 늘 많아서
늘어나지만
더 많이 드리지 못함을 죄송해 해야 합니다.
혹 함께 먹고
함께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
그것이 예수 믿는 마음입니다.
예수 믿는 것,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함께 먹고
각 사람의 필요를 내가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했고
성령님은 하나됨이라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짜>라고 합니다.
나는 가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짝퉁과 진품은 멀리서 보면 같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짝퉁과 진품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멀리서는 다 진짜 같지만
가까이서 봐서 진짜가 진짜입니다.
가까운 형제,
가까운 사람에게 진짜로 보이십시오.
그것이 진짜입니다.
멀리 있는 한국사람들
나를 선교사로,
목사로 진짜로 여길 수 있습니다.
멀리 보는 성도들 나를 진짜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나를 아는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
옆에 사는 친구가 나를 진짜로 알아줄 때 나는 진짜가 됩니다.
온 백성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내 옆에 사는 나의 친구,
나의 가족,
나의 사역자,
나와 같은 곳에 지내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땅에 진짜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진짜는 함께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함께 먹을 수는 있지만
함께 필요를 위해 재산과 물질은 내 놓는 사람입니다.
함께 먹지도 못하고
필요를 채우지도 못하고
오직 말로만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을 나는 가짜라 말합니다.
믿음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삶으로 증명됩니다.
물질을 내 놓지 못하고
재산을 내 놓지 못하고
함께 먹지 못하는 사람은
편안할 때,
별일 없을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핍박이 오고 고난이 오고 아픔이 오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
초대교회는 진짜입니다.
핍박이 있고
박해가 있고
아픔이 있음에도
그들은 함께 먹고
함께 필요를 나누고
자신의 재산,
자신의 물질을 나누던 사람들입니다.
편안 한데도
함께 먹지 않고
함께 필요를 나누지 않으면
진짜를 거론한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나>만 존재하는 믿음,
가짜입니다.
오직 <함께>만이
믿음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 구역모임 식사입니다.
없는 형편에 구역식구 대접한다고 정성으로 대접한 음식입니다.
밀리팝에 감자와 부르보스(소시지)가 다이지만
어렵게 마련한 음식입니다.
최선을 다해 섬기는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요.
여기가 천국이고 여기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작은 음식에도 기쁨으로 나누고 섬기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