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내어드림의 법칙(행1:9-22)
성령을 임하는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건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은 움직입니다.
왜 기도일까요?
왜 기도를 통해서만 성령은 일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천목사님 댁 막내 혁진이가 어릴 때 일입니다.
사모님께서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호진이 우진이가 이런 저런 대답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웃었습니다. 그러다 혁진이가 한마디 했습니다.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아서요. "
기도는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백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으로,
자신을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형통의 방편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참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사는 사람은 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자신이 죽었다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사람,
자기에게는 힘도 소망도 없다는 사람만 기도합니다.
둘째, 기도는 하나님의 힘으로만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나에게는 이제 소망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전에는 내 힘으로 살았고
내 힘을 의지 하고 살았는데
기도함으로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겠다는 겸손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나의 소망이라는 고백입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장 기도하지 않을까요?
내 힘이 남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뭔가 할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직 나에게 소망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도의 자리에 가지 않고
기도의 자리에 온다해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기다린 다는 고백입니다.
지금껏 인간은 인간의 길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길은 죽음임을 아시고 하나님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나에게 십자가가 되려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해야합니다.
넷째, 기도는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증명,
내가 이제는 세상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증명해 보여야합니다.
기도는 누가 합니까?
내가 이제 죽었고 예수님만이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만 기도합니다.
오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4)
뿐만 아니라 가롯유다 대신 세울 사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24)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기다림입니다.
이전에는 내 뜻대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으려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의지와 뜻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전제 조건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소망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만 붙든다는 겸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는 손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오기전에 한가지만 했습니다.
오직 기도입니다.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세운 것입니다.
성령은 오직 기도 즉
내가 죽었다 고백하는 시간과 마음과 육체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공간을 드리고
육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시간과 공간과 육체를 따로 구별하여 드리지 않는 기도는
아직 내가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성령이 이끌지 못합니다.
죽었다 고백하는 사람만
이끌어 영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이끄심의 영이라 했습니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주도적 영입니다.
성령께 우리를 맡기지 않으면 성령도 일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죽은 마른 뼈에 들어가지 살아 있는 육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른 뼈가 마른 뼈가 되야하는데
산 것처럼 돌아다니고 자기 의지대로 사는 곳에는 거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내어 드림> 속에 임합니다.
내어드림의 시작은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시작으로
그들은 시간도
물질도
삶도
생명도 내어드립니다.
기도의 내어드림 없는 성령의 역사는 없고
기도의 내어드림 없는 자기 고백은
여전히 자신이 하나님으로 산다는 증명입니다.
그래서 기도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이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기도안에 내어드림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어 드림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드리는 믿음의 고백은
기도의 내어드림으로 시작됩니다.
기도의 내어드림을 통해서
다름 단계의 내어드림을 성령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믿음이지요.
성령이 일하시는 가장 기초적 내어드림을 보고
성령은 다름 단계의 이끄심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입니다.
기도가 사람을 세우고
기도가 사람을 이끕니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유일한 사람 편에서의 힘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령이 우리 가운에 일하시게 하는
최소한의 우리의 내어 드림이며
최고의 내어 드림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기도 말고 다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기도를 빼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말고 다 시도하지만
성령은 기도를 통해서만 일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법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유일한 조건은
그들의 변화된 삶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의 부활을 믿고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입니다.
그 담대함의 근원지는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적진 한 가운데도 성령이 임하면
신앙의 모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근원지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지난 사람만이 성령의 마음을 압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통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보석이 아니라 보물섬이고
선물이 아니라 선물 보따리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증인으로 살고 싶지 않고
주인으로 살고 싶어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편하게 살고 싶고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고백,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고백의 배를 타지 않으면
능력의 항구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권능의 장소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일하게 성령을 기도함으로 기다리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유일한 도구는
기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유일한 길,
기도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증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증인이 아니라 증인을 가장한 주인으로 살고 싶은
복음을 핑계 삼아 여전히 이 땅에 미련을 두어서입니다.
높아지고
자랑하고
편안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정말 복음을 믿으십니까?
정말 부활을 믿으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럼 기도 하셔야합니다.
기도만이 성령을 움직이는
기도만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유일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 주인삼고
스스로 하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의 유무는
내가 하나님이냐
증인이냐를 결정하는 유일한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로 하나님의 신이 떠나 사람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 육체가 하나님의 신인 성령이 오게 하는 유일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이 땅에 새롭게 주어진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나를 하나님으로 살게 하느냐 하는 갈림길은 선악과였습니다.
기도한 제자들이 성령을 경험합니다.
기도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이 시대의 선악과입니다.
기도는 내어 드림입니다.
나를 내어드리는 유일한 사람편에서의 고백은 기도입니다.
경험도 많아집니다.
지식도 많아집니다.
학력도 높아집니다.
연륜도 깊어집니다.
그러나 기도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은 나의 재주입니다.
그러나 경험도
지식도
학력도
연륜도 없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수 천번 구르는 참깨보다
한번 구르는 바위가 더 멀리 갑니다.
기도 안 해서 수 천을 구르는 참깨보다
기도해서 한 번 구르는 바위로 사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를 고1때 믿고 그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교회에서 하루 1시간씩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눈물 없이 지난 날이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한 시간 기도에 55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5분은 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군대를 갈 때까지 이어진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나를 불쌍이 여기신 모양입니다.
수 많은 일들이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기도를 선교지에 와서 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기도했습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 속에 전부를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전부가 기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유일하게 기도입니다.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드리는 유일한 믿음의 일입니다.
기도!
할 수 있다면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 윗배크교회의 구역모입니다.
함께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샘목사님의 사모 로즈는 올 초 심각한 문제로 병원신세를 몇 개월 졌습니다.
암이 아닌지 의심하고 배에 손을 대지 못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완쾌시켜주시는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기도의 은혜를 경험하고 목사님 부부가 더욱 뜨겁게 기도합니다.
샘목사님은 한국 방문 이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립니다.
기도는 우리의 겸손의 고백입니다.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