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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의 법칙

증거의 법칙

 

 

 

 

 

 

 

 

 

 

 

 

증거의 법칙(1:1-5)

 

성령이 임한 다는 것은 가지를 의미한다 .

내적 완성과 외적 불완성이다.

 

 

무슨 말인가?

나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사실은

사람에게 떠났던 하나님의 신이 임함으로

완전한 영원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영원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는

영원의 길이 열리고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 완성이다.

구원의 회복,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개인적으로 안에 일어남으로

나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안에 들어오는 완성의 단계에 이른다.

물론 자체가 완성되지 않음으로 오는

구원을 이루는 단계에 이르지만

이미 한번 택하신 자녀들의 인치심은 확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부터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외적 불완성 안에 거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이미(already) 아직(not yet)사이에 거하게 것이다.

이미 안에 들어온 하나님나라와 아직 불완성 가운데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가 땅에 공존하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하신 일이 뭔가?

사십일 동안 하신 일은 오직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3)

 

 

년의 공생에 동안은 행하시며 가르치셨고

부활 후에는 오직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사십일 말씀 사경회를 것이다.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하고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회복할 때를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의 권한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 나라 회복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성부 아버지라는 것이다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7)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신 한가지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증인> 되라는 것이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다.

증인이 되라는 것은 성령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라는 것이다.

 

 

성령이 오기 전까지 우리의 방향은 자신이다.

자기를 향한 열심,

자기를 향한 뜨거움,

자기를 향한 사랑이다.

 

방향이 이제 성령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라는 것이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성령과 같은 방향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예수를 오래 믿고 믿고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높냐 낮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증인의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다.

아래로는 성령의 법칙 4번째 "증거의 법칙"이다. 

 

 

 

 

우리가 성령의 법을 살려면 세가지 법칙

온유의 법칙,

소자의 법칙,

그리고 부인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했다.

(다음에 글을 올릴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런 성령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가?

이런 고생을 해야하는가?

이렇게 번거롭고 귀찮고 힘든 법칙들을 따라야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위함이다.

그분이 드러나고

그분의 이름이 높아지고

그분의 이름이 존귀케 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럼 그분의 이름 예수그리스도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

바로 영생이다.

영생은 예수님이 아니면 오지 못한다.

영생을 주기 위해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리스도는 성령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법을 따라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능력이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가 증거되고 예수를 증인으로 사는 것이 성령을 충만이 받는 목적이다.

목적을 잃어 버리는 모든 능력과 힘과 권세는 거짓 선지자의 반열에 오르는 지름길이다.

 

 

 

첫째,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영이다.

 

성령의 현상과 성령이 임할 나타나는 모든 유익과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증명하고 증인으로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성령이 언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증거하신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증명된다.

그리스도를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보이게 하는 영이 성령이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보혜사는 원어적으로 도와주는 영이다.

무엇을 도와주는 영인가?

우리를 도와준다.

우리가 약할 강하게 하고

우리가 문제가 생길 치유하고 회복하는 영이다.

그것이 목적인가?

 

아니다.

 

회복과 치유와 능력을 통해서 결국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 나라가 증거되는 것이 목적이다.

성령은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도록 모든 것을 지원하는 영이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였다.

결국 무엇을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다.

 

[2:11}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영생의 법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일은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할 사용하는 단어이다.

구약에서 일이라는 단어는 21번이 나온다.

거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할 사용하는 단어이다.

 

 

[행4: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충만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성령은 임하시고 충만하게 하시고 인도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충만으로 찾아 오신다.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부인하고 받지 않고 마음을 강퍅케하는 것이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오직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거스르는 죄이다.

죄는 용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

 

 

[행7: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그리고 나오는 말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잡아 죽였다' 그렇게 나온다.

 

 

말은 스데반이 공회 앞에 사도행전 7 전체에 걸쳐

말씀을 전하는 내용 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예수를 증거하는 내용을 아브라함부터

설명하고 너희가 그를 죽였다 그렇게 나오니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분이 나고 마음에 찔려 그를 돌로 죽인 것이다.

 

 

성령이 임할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증거되고도

예수를 부르지 않는 자는 구원이 없다.

 

 

사람들은 오직 하나다.

그리스도를 받느냐 그리스도를 거부하느냐!

 

 

성령은 역사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오직 하나다.

예수를 증거하느냐 예수를 부인하느냐!

 

 

그래서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증거한다.

 

 

[롬8: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은 증거의 영이라 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증거한다.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를 핍박하고 박해하고 미워한다.

 

 

[요15: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성령은 우리를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증거하신다.

그분의 직책이 증거하시는 영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언제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증인으로

살기 원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을

성령은 우리 안에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성령은 예수를 뜨겁게 증거하고자

안에 충만하게 역사하신다.

 

 

성경의 성령이 충만한 사건을 보면 우리가 언제 성령이 충만한지 알게 된다.

 

세례요한과 관련된 일이다.

 

[눅1:15]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세례요한에 관하여 성경은 누가복음 1장에서 15,41,67

세번에 걸쳐 성령충만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세례요한에 관하여 엘리사벳에게

사가랴에게 세번이나 충만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그리고 예수님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에게도

성령이 위에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성령이 충만하며 성령이 위에 있다고 하는가?

 

 

[눅1:15]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1:41]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1: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눅2: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오직 하나이다.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는 영이

일을 하는 사람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언제 충만하여 지는가?

 

[눅1:35]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드러나는 일에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신다.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가?

400년을 기다린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가 오심을 준비하는 자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준비하고 그분을 예비하는 일을 성령으로 충만할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된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이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증인으로 사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하신다.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전할 증인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성령의 충만과 성령의 능력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나에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느냐고?

우리 교회는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느냐고?

 

 

간단하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삶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증인의 삶을 교회가 살지 않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언제 성령으로 덧입게 되는가?

복음,

예수를 삶으로 증거하기로 작정할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진다.

 

 

잃어버린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올

하늘에서 얼마나 기뻐하고 기뻐하는지 모른다.

일을 작정하고 결심하고 결단하고 나갈

성령이 충만하게 안에 역사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전이다.

성령의 행전인가?

성령께서 어떻게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확장시켜 가셨는지를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

성령행전이라 한다.

 

 

복음을 전하면서 일어났던,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일어났던

많은 기적과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증거의 법칙을 적용할 성령의 역사,

성령의 법은 충만하게 일어난다.

 

우리 삶을 돌아봐야 한다.

얼마나 힘없이 사는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사는가?

얼마나 패배주의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겨우 신앙하나 지키려고 몸부림치며 사는가?

 

 

최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다.

자신의 몸을 돌보려 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미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모든 길을 여셔서

우리를 충만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증인으로 살기로 작정할

세례요한의 부모에게 임했던,

시므온에게 임했던 성령의 충만이 일어난다.

 

 

사도행전의 제자들,

사도들처럼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너무 위로에만 치우쳐 있다.

설교가 너무 교훈에 치우쳐있다.

설교들이 너무 가벼워 있다.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전하며

예수의 십자가와 구원과 영생이 빠져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무기력한가?

복음을 전하는 삶이 빠져있다.

겨우 교회를 다니고 겨우 성경을 배우고,

겨우 예배를 드리는 것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형편이 나아지면 더욱 주를 섬기겠다 수없이 다짐 하지만

언제 형편이 나아지는가?

지금이 최고이다.

지금이 예수를 증거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의 복음을 위해 증인의 삶을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 것이다.

예비된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맛나와 매추라기 홍해와 여리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말라.

 

[행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의 유일한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고 성령을 보내셨고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사명,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생명을 전부 드릴

하늘이 열리고 길이 열리고

세상이 빼앗을 없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언제 증거한 것이 마지막인가?

언제 천국과 영생과 복음을 전했는지 기억이나 나는가?

 

 

교회 안에서 봉사한다고

교사로,

찬양대로,

사역자로 산다고 안전한 보험을 들었다 착각하는가?

정말 착각하지 말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지 않는 곳에는

증인의 삶을 살지 않는 곳에는

예수의 이름이 증거되지 않는 사람과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를 증거하고 증인되는 삶이

우리를 새롭게 살릴 것이다.

 

 

우리를 부르셨는가?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택정하셨다.

 

 

위대한 로마서의 시작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롬1: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우리의 존재 가치는 복음을 전할 드러난다.

복음을 전하는 ,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삶이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가 되어야하고

일에 우리의 전부를 거는 삶이

성령의 충만으로 인한 평안과 능력을 가지게 것이다.

 

 

성령의 법칙은

<증거의 법칙>이다.

 

증거하지 않는 성령은 어디에서도 힘을 쓰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로마서의 마지막이 뭔가?

예수의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심이다.

 

롬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높아짐으로가 아니다.

내가 되어서가 아니다.

 

나는 비천하고

나는 그릇이어도

내가 전하는 예수

내가 사는 증거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을 드러내는 증거의 ,

증인의 삶을 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있다.

 

 

언제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언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언제 그들이 적군을 물리쳤는가?

그들이 준비가 되서 이긴적은 한번도 없다.

그들이 조건이 좋아서 이긴 전쟁은 한번도 없다

 

 

우리는 조건을 먼저 따진다.

나의 조건이 나아지면,

나의 형편이 나아지면…

 

가짜다.

복음을 가장한 나의 잘됨이 목적이다.

 

 

언제 우리에게 화가 임하는가?

오직 하나이다.

언제 나라가 버림을 당하는가?

오직 하나이다.

언제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가?

오직 하나이다.

 

 

[고전9:16]~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

예수를 전하지 않을 우리에게 화가 있고,

버림 당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며 당하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증거의 증인의 삶을 나타나는 문제는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일 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해야 하는가?

오직 복음을 위해서이다.

 

 

[고전9: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에 참여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를 전하는 일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

 

이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야 한다.

 

 

[롬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 전함,

그리스도를 증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한다.

오직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다른 것은 능력이 아니다.

복음이 능력이다.

 

 

[눅9: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부끄러워 말라.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결국 우리는

우리가 대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음이 우리를 더욱 충만케 한다.

 

 

[딤후1:8]~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면

복음 때문에 오는 고난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한다.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음을 위해 부르신 부르심의 사명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로,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삶으로 복음,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라.

성령은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삶을 채우실 것이다.

 

 

성령은 오직 증거하는 영이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증인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역사하신다.

 

겨우 위로 받자고,

겨우 마음에 평안을 얻자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오직 복음,

예수를 증거하는 곳에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성령의 법칙 네번째는 바로

< 증인의 법칙 > 이다.

 

성령은 증거하는 곳에 임하셔서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충만케 하신다.

 

 

쓸데 없는 곳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제발 부탁인데 형통을 구하지 말고

증거의 법칙을 잡으면 형통은 같이 찾아온다.

 

 

기회를 얻든지 얻든지 예수를 증거하라.

이것만이 우리 인생을 성령과 함께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구원을 주신 이유이다.

 

 

[딤후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이끄심의 목적은 증거의 자리이다.

안에 완성된 개인적 구원의 만족이 아니다.

안에 완성된 개인적 구원은

불완전한 '아직'(not yet) 위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완성의 증거이다.

 

 

완성으로 불완성을 채우는 것이

완성의 존재 이유이다.

 

 

증거의 .

성령의 이유이다.

 

 

 

 

 

 

 

 

  *순교한 파니 전도사 가족입니다.

명이 개척을 시작했다가 이제는 명이 남았습니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다

명이 순교를 당하고 명이 남았습니다.

명도 다른 곳에 교회를 세워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목숨을 걸고 증거하는 삶입니다.

증거하지 않는 삶은

가짜고

거짓 선지자입니다.

오직 자기의 유익만 있습니다.

양을 위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만 위하는 ,

주님은 그것을 가짜라 합니다.

진짜가 되려합니다.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짜가 되는것 같아 오늘도 아픔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