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시작(행1:1-5)
내 힘으로 하려는 모든 의도와 노력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할 때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 일해야 하는
노동형 인간 자급자족의 삶을 살게 된다.
아담의 죄의 형벌이 무엇인가?
평생 노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왜 벌인가?
죄의 대가인가?
스스로 자신의 먹을 것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의 삶은 하나님이 심지 않고 뿌리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축복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으니
스스로 먹고 생존하는 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엉겅퀴를 내고 노동한 것 만큼 열매를 주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일한만큼 거두지 못하는 나라 세상이 죄의 세상이다.
무엇이 복인가?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대로 얻는 것이 복이다.
더하여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 복이다.
언제 가능한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는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전부를 채우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을 주인,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전부를 채우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믿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고 스스로 주인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마음 그것이 죄이다.
죄의 대가는 내 스스로 모든 필요를 채워야만 하는 상태이다.
믿음의 회복이란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채우심을 믿는 것이다.
생명도, 삶도, 나의 모든 필요도.
사도행전의 시작이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람이 일하고 노동해서 얻던 세상의 모든 것을
믿음의 길을 통해 성령께서 채우시는 역사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성령을 거부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그 말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데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그 성령을 거부하면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용서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삶이다.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주도하시겠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구름기둥이고 불기둥이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한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심은 에덴동산의 회복이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요
생기의 회복이요
가나안의 회복이다.
성령!
이끄심의 주체이다.
이끌리지 않는 삶은
여전히 내가 하나님으로,
주인으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예수님 조차도 광야에서 성령에게 이끌리셨고
성령으로 말하셨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광야이든,
마귀에게 시험을 받든
사람들에게 말을 하든
모든 것을 성령의 이끌림 가운데 거하는 삶이
회복된 삶,
생명을 소유한 삶이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시다.
그 생명의 역사가 사도행전이다.
오직 이끌림에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이다.
이끌림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면
이루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은 이끌림에 자신을 맡기는 상태까지 훈련하신다.
일단 이끌림에 자신을 맡기는 법,
파도를 타는 법을 알때까지
이끌림에 자신을 맡길 수 밖에 없도록
훈련하신다.
그것이 4복음서이다.
이제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이끌림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해본다.
사도행전!
이끌림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의 역사!
성령행전이다.
*발방크 교회 주일학교입니다.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청년들의 수고로 성경캠프를 열고
지금까지 주일학교가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함께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창고를 빌려 예배를 드리는데 이번 달이나 다음달 중에
양철교회를 세웁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