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 걸림돌(요21:15-25)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이 땅에서 한 몫 잡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믿고 세상에서도 잘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솔직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 사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베드로에게 어떻게 죽을지 미리 말씀합니다.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도 전에 어떻게 죽을지부터 말씀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사명은 이 땅에서 손해 보는 것입니다.
사명은 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사명은 사명을 통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명은 사명을 통해 내가 손해 보고 내가 불편해지고
내가 눈물의 시간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묻는 것은 네가 양을 사랑하느냐가 아닙니다.
네가 이 세상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를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15)
사명은 내가 세상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내가 좋아 하는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고 내가 좋아 하는 것이 때로는 걸림돌이 됩니다.
참 사명은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세습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사명은 세상보다,
사명은 사람보다 주를 더 사랑할 때 감당하게 됩니다.
세상을, 사람을 더 좋아하며 하는 일은
<사명>이 아니라 <사업>입니다.
그것도 주님의 사업이 아니라 자기 사업입니다.
평생 자기 사업하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 하지 못해서 하는 것이
세습입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할 때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명은 주님을 더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사명은 이 세상사람보다 더 주를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보다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그것들을 포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더 사랑하느냐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사랑하고 좋아하는 분이 주님일 때
우리는 나의 사명이 아니라
나의 목표가 아니라
주님의 사명
주님의 목표를 이루게 됩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걸림돌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잘하는 것들입니다.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은 이 사람들,
이것들입니다.
우리의 사명감당의 걸림돌은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입니다.
주님은 사역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있습니다.
돈입니다.
사람입니다.
돈과 사람을 끊어내는 훈련을 하십니다.
한마디로 내가 의지할 근거를 끊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힘이 될만한 전부를 죽이라 합니다.
말도,
가축도 모든 힘이 될 만한 것들을 다 태우고 죽이라하십니다.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지 않을 요소,
하나님 외에 의지할 모든 요소를 없애십니다.
인간적으로 참 소망이 없어야 하나님만 의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
그래서 믿을 구석이 없는 곳을 몰아가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 장소,
그곳이 시내산입니다.
그곳이 갈릴리입니다.
그곳이 과부의 집이고 그곳이 그릿 시냇가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장소의 의미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만>입니다.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준비입니다.
우리의 믿을 근거는 없애십니다.
믿을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믿을 것이 없어야 하나님만 믿습니다.
통장에 돈이 있고
믿을 사람이 있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믿을 힘이 있고
믿을 내 재주가 있으면
기도하지 않고
사명을 사명으로 받지 않습니다.
나에게 믿을 것이 없을 때 그때 하나님 자신이 믿음의 대상으로 나타나십니다.
우리에게 믿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며
귀한 열매를 맺으시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날마다 하루 세시간을 기도하시는 선교사님과 대화를 해보면
세상을 참 모르십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십니다.
그런데 사역은 사도행전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오직 하나 입니다.
<하나님 만> 입니다.
믿을 것이 많고
의지 할 것이 많으면 기도하지 않고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좋아하고 사랑할 것이 많은데 주님만 사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재주 많은 선교사님들을 봅니다.
실력(?)이 좋아 후원도 많이 받고
자동차가 몇 대에 집도 제집에 아이들도 좋은 학교에
그런데도 어렵지 않게 사는 능력 있는(?)선교사님을 보면
참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죄송한 마음이지만
하나님 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역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런 사업(?)도 잘하시고
하나님께만 목숨을 건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지만
사람은 세상에 목숨을 걸면
하나님께 목숨을 걸지 못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당히 해도 사람이 모이고
적당히 해도 헌금이 많이 모이고
적당히 해도 목회에 문제가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다 한가지 이유입니다.
배가 불러서입니다.
내 배가 부르면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수 차례 부탁하신 당부입니다.
제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가 부르고 너희가 편안해질 때 너희의 재주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축복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첫 시간이 어렵지만
그 사명을 감당해 가는 과정이 더 어렵습니다.
내가 잘해서 그런것 같고
내가 재주가 많아서 그런것 같고
하나님 아니어도 내가 잘 살수 있을 것 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증거는
<하나님 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믿고 나도 믿고,
하나님의 일도 하고 세상 일도 하고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어떻게 전하고 어떻게 하면 생명을 살릴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까를 고민합니다.
그것은 성도뿐만 아니라 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본질이 비 본질이 되고 비본질이 본질이 되어
사역의 주객이 바뀌는 일이 선교현장에 너무 많이 일어 난다고합니다.
그것이 성도나 사역자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왜 그럴까를 고민합니다.
기도합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주만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 갑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현장이고
사역의 현장이고
선교의 현장입니다.
"이 사람들보다,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이 물으신 물음에 답이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질 때
우리의 사명은 점점 멀어집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는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자꾸 많아져서입니다.
내가 할 줄 알고
내가 믿는 것이 많아져서입니다.
교회에서 큰 소리치는 성도
사역의 현장에서 큰 소리치는 사역자는
내가 믿을 것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보다 믿을 것이 있어서 입니다.
자신의 경력,
자신의 업적,
자신이 믿는 다른 어떤 실력,
자신이 믿는 권력과 돈과 힘이 있어서입니다.
사명은 내가 믿을 것이 있으면 못합니다.
내가 믿을 것이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믿을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절실히 알 때 우리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둘째, 사명을 감당하는데 걸림돌은 비교입니다.
베드로에게 사명을 감당하랬더니 요한은 어떻게 되는지 묻습니다.
주님이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22)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것 중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다른 사명자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이게 뭐냐는 겁니다.
나는 사명 감당하는 죽는데 저 사람은 왜 주님 곁에 머무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사명이 다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왜 요한을 주님이 끝까지 곁에 둡니까?
왜 요한에게 예수님의 어머니를 맡깁니까?
요한은 마지막까지 살아서 어머니를 돌보고
요한계시록까지를 기록하고 죽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밧모섬에 유배 가서 하나님의 성경의 완성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의 사는 모양을 넘봅니다.
얼마나 크냐
얼마나 잘하냐
얼마나 얼마나…
주님은 단호합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따름의 걸림돌은 비교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기 전 예수님의 자리 좌 우편을 차지하려던 제자들의 마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 지고 죽는데 너는 뭐하냐?
나는 이런데 너는 무슨 일 하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냥 다른 사람은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그냥 나의 사명을 따라 가야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의 사명이 무엇인지가 보이지 않아야합니다.
오직 주를 사랑하기에
주님이 부르신 사명을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한다고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열심히 안하면 안한다고 문제를 삼습니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살만하니 옆 사람 신경 씁니다.
하나님만 붙드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님만 사랑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님만 사랑해도 양을 사랑하고 돌보고 먹이기 어렵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의 핵심은
"이것들보다 나를 너 사랑하느냐"입니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주님으로부터의 물음입니다.
사명의 걸림돌!
내가 잘하고 내가 믿는 것,
그리고 다른 사명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주만 사랑할 때 가능한 우리의 사명!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