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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모세의 공통점 열 번째

베드로와 모세의 공통점  열 번째

 

 

 

 

 

 

 

 

 

 

 

 

베드로와 모세의 공통점  번째

(요21:15-19)

 

 

 

마지막 번째는 번째와 연결이 됩니다.

부르심의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존재의 이유를 알고 사는 사람과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존재할 뿐입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보다 놀라운 은혜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베드로는 모두 열정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이 분명한 부르심과 목적이 만날

그들은 어떤 사람도 살아보지 못한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위대하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의 목적에 맞는 삶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한가입니다.

나의 고민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사람들도 행복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한가?

부르심의 목적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행복은  부르심과 목적입니다.

베드로에게 기쁨은 부르심과 분명한 목적입니다.

 

 

사람의 시간을 봐야합니다.

모세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10)

 

 

 

모세의 부르심은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음성은 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우리는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잔잔하지만 강력한,

한번도 들어 본적 없지만 듣자 마나 나의 하나님임을 아는

가장 친근한 소리,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그런데 부르심은 반드시 목적을 가집니다.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적 가운데 나타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그리고 광야에서 예배하는 백성이 되는 훈련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에 맞는 예법과 율법과 제사법과 하나님께 예배하는 전부를

모세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는 사명까지,

애굽을 나오고 예배하는 것까지 하다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베드로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4:18)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부르신 목적은

고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낚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목적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그는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믿음과 형제를 굳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에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로 안주하고

내가 천국 간다는 것으로 행복해하고 삽니다.

 

아닙니다.

구원이 목적이면 예수를 믿는 순간 죽어야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을 믿습니까?

죽으십시오.

그것이 우리 믿음의 결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

광야에서 부르시던,

물고기를 잡던 현장,

삶의 현장에서 부르시던,

가난하게 부르시던,

부하게 부르시던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목적을 향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출애굽하고 예배하는 백성 되게 하는 삶이기에

출애굽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받습니다.

출애굽하고 광야에서 지내는 모든 것을 허락 받습니다.

 

그것이 부르심에 맞는 능력입니다.

부르심은 목적을 반드시 동반하기에

부르심에 맞는 능력도 동일하게 허락하십니다.

아니 이미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부르심의 목적대로 살지 않기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낚는 일이기에

한번의 설교로 수천이 돌아오는 일이 생깁니다.

한번의 설교로 수천이 돌아오는 것은 예수님도 못했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드는 일입니다.

구원입니다.

생명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사명은 저희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에

이름대로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천국 가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은 성령께 맡깁니다.

 

 

부르심의 목적을 찾는 ,

일에 나의 전부를 거는 것이 우리 삶의 우선 이어야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많습니다.

 

 

부르심을 확신하고

부르심의 목적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목적에 맞는 열정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고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힘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목적의 통로를 통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그의 부르심의 목적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에 맞는 기도와 전략은

하나님이 전부 들어주십니다.

하늘의 태양도 달도 멈춥니다.

강도 멈추고

천지를 움직이는 일도 일어납니다.

 

 

부르심의 목적이 가나안의 정복이기에

일에 필요한 전부가 허락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어떤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목적을 많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게 허락된 목적을 위해

전부를 사용할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더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소유를 사용할 불안한 이유와

담대하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서입니다.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명확한 인식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경험도 인식도 없는데

문제는 열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정 없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단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열정을 가질수 밖에 없는 본능이 있는데

본능이 내가 부르심의 목적을 수행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목적에 맞는 삶을 살만하다라고 느끼는

어떤 하늘의 기쁨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 하다 죽어도 좋아하는 마음을

목적을 수행할 느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 해야합니다.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그때 우리는 행복을 알게 됩니다.

 

 

부르심 그리고 목적입니다.

열심히 사십니까?

목적 없는 열심은 사람을 죽이는 열심이 됩니다.

주를 부인하는 열심이 됩니다.

주를 저주하는 열정이 됩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날 내가 가진 부르심의 목적을 찾아야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부적을 지갑에 넣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1 4월에 교회를 가고 7월에 수련회를 갔습니다.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없는 눈물을 흘리면 죄를 자복하고

주님이 아니면 절대 살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잠자는 밤에 성냥과 부적을 들고 지리산 밤하늘 아래 섰습니다.

그리고 부적을 태우면서 하나님만 믿기를 다짐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믿음의 자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째 소명

그리고 다시 왔던 소명은

하나님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그분의 백성,

그분의 양을 목적으로 주셨습니다.

 

 

어떻게 인도하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향한 부르심의 목적은

그분의 양입니다.

백성입니다.

 

 

자리에 내가 있으면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고

나도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물론 부르심과 목적을 발견하는데

인생 전부를 걸어야합니다.

모세와 베드로는 인생 전부를 걸었고

실패했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심으로 그들에게 목적을 주셨고

다시 일어나는 부흥의 기쁨을

그들의 삶에서 경험합니다.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걸고 물어야합니다.

적어도 열정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야합니다.

적어도 나는 인생을 책임질 능력이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고백하는 순간까지 가야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목적과 함께 찾아오십니다.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부르심 안에 있는 부르심의 목적을 찾으십시오.

누구나 있고 부르실 안에 아는 기쁨,

그것을 찾으십시오.

 

 

그럼 행복도

능력도

기쁨도 알게 됩니다.

 

 

 

 

 

 * 저의 안경입니다.

아니 천목사님 사시던 선교관에서 일하는 우리 성도

모세(그러고 보니 오늘 글의 주인공이네요) 안경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경 테에 모세의 안경 알을 억지로 넣었습니다.

모세가 전도하러 갔다가 안경테가 부러졌고

가드너 형편으로 사기 힘든 안경비용으로 전전 긍긍하는 모습에

안경 알을 빼고(빼다가 안경 알은 부러지고^^)

모세의 알을 억지로 끼웠습니다.

이게 안경입니까 모세의 안경입니까? ^^

 

안경요?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가진 것이 사명입니다.

 

성도가 행복하면 목사는 행복합니다.

부르심 대로 사는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