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전부를 얻는 하늘의 단어(요20:24-31)
우리가 없는 것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믿음입니다.
태초에 이 세상을 있게 한 근거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근원은 믿음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사라지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람에게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새롭게 주어졌습니다.
그 나라를 움직이는 힘은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기도하시고
찾으시고 훈련하시는 거의 대부분은 믿음입니다.
오늘 도마가 나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보지 못한 자의 마지막은 믿지 못함입니다.
손도 보여주시고 옆구리도 만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9)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1)
믿음의 목적은 뭔가요?
기적인가요?
능력인가요?
생명입니다.
믿음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생명이 없어진 세상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생명이 없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은 천국입니다.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곳은 천국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풍성함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가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 믿음이기 때문에
오직 믿음만을 주시기 위해 자신이 손과 옆구리도 만져보라 하십니다.
만지고 믿는 자보다 만지지 않고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십니다.
믿음이 복입니다.
믿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어떤 일 앞에 일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지 말고
그 일에 대해 믿음이 있는지
믿어지는지
하나님의 하실 일이 기대가 되는지를 먼저 헤아려야합니다.
믿음을 가지는 유일한 것은 우리 안에 없습니다.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담 이후에 믿음이 절대 없습니다.
다만 자기를 믿는 믿음 뿐입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열 두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나머지 열명이 가나안을 정탐합니다.
그런데 두명은 믿음으로 나아갔고
나머지 열은 믿음을 가지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둘은 가나안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보았고
열은 가나안을 보면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가나안을 보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의 메뚜기 같음을 보는 것입니다.
자신을 볼 때 결코,
세상을 볼 때 결코 믿음이 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볼 때만 만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
믿음 안에 거하는 사람의 특징은
얼마나 그리스도를 보는 시간을 가지느냐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것을 간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머물게 하는 시선의 고정입니다.
기도는 나를 보지 않는 훈련이며
기도는 십자가 동산에 머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
우리의 일은 아무것도 볼 것없는 광야에서 살아 남는 법인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믿음이 오도록
믿음이 잡히도록 먼저 엎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오면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합니다.
믿음이 오지 않으면 내가 일합니다.
그 믿음을 내가 내 몸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일합니다.
모두 압니다.
그런데 믿음이 일 하도록 믿음 앞에 서지 않습니다.
믿음이 나를 관통 해야합니다.
믿음이 나를 꾀뚫어야합니다.
믿음이 나를 덮어야합니다.
믿음이 나를 끌어야합니다.
소가 사람을 끌고 가나요?
사람이 고를 끌고 가나요?
아담에게 죽음이 온 것은 오직 믿음이 사라질 때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지탱하는 근원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토대 위에 사랑으로 관계합니다.
그 믿음의 형상이
사람에게 그대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믿음의 형상입니다.
믿음이 힘입니다.
믿음이 일합니다.
믿음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사라지니 사망이 오고
사망이 오니 생명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 사망에 생명을 위해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과 다시 연합하는 법은
잃어버린 믿음입니다.
믿음의 길을 알아야 하는데
예수를 믿고 다시 열심,
율법으로 살려합니다.
믿음의 길,
믿음의 법을 구원 얻는 한번의 법으로만 생각합니다.
오해입니다.
실수입니다.
착각입니다.
믿음은 한번의 믿음이 아니라
생명이 사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근원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관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만 말씀하고 믿음으로만 대화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일하지도
아니 일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믿음을 주시기 위한 모든 방법의 광야 훈련입니다.
믿음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잃은 이유는 믿음이기에,
생명의 존재 근거가 믿음이기에
오직 믿음만을 찾으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병자를 고치기 전에
사람을 살리기 전에
"네가 믿느냐"를 먼저 물으시든지
기적을 통해 <믿게>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믿음인 이유는
믿음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한번의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는 삶이고
믿음은 사는 법이고
믿음은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소리입니다.
믿음은 먼저 내 안에서 일합니다.
확신이 옵니다.
기대가 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그것이 저절로 내 안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믿씁니다~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늘에서 찾아오는 성령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 음성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 음성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사람에 대하여 참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믿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인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삶으로 증명 되어져야합니다.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믿는다면 따르는 표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끌고 가는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붙잡힌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모든 것을 끌고 갑니다.
내가 끌려가는 뭔가가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믿는 것입니다.
나를 끌고 가는 어떤 것,
그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이야기가 바로 나옵니다.
베드로의 삶은 부활전화 부활 후로 나뉩니다.
베드로의 삶은 부활 전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끌고 갑니다.
비록 예수를 믿고 따르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의 뜻을 위해 자신을 삶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부활 후의 베드로는 자신의 삶을 무언가가 끌고 갑니다.
한마디로
참 믿음 안에 사는 삶은 "이끌림"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끌림이 없는 삶은 아직 내가 주인입니다.
아직 내가 나를 믿는 것입니다.
이 이끌림 안에 있는지
오늘 고민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소가 사람을 끄는지
사람이 소를 끄는지…
믿음은 이끌림으로 가는 방편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믿음의 법을 알 때 우리의 사는 삶은
가벼움과 쉬움이 됩니다.
믿음!
전부를 얻는 놀라운 하늘의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