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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에서 갈보리까지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19:35-42)

 

 

 

 

 

 

에덴 동산이 죽음의 무덤이 되었다.

동산이다.

동산에서 시작된 죄로 죽음이 왔다.

 

 

죽음을 닮기라도 하듯 예수님은 동산에서 죽으시고

동산에 장사 지내시고 동산 무덤에 누이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41)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고 받은 대로 갚으시는 분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지었던 ,

그래서 숨었던 아담의 모습 그대로를

오늘 예수님은 동산에서 재연하신다.

 

 

십자가를 갈보리 동산에 세우시고

동산에 아직 한번도 장사한적 없는 무덤에 누이신다.

그리고 바위로 곳을 가리신다.

 

 

하나님은 정확히 기억하신다.

에덴에서 당한,

에덴에서 맞은 수치와 아픔과 죽음을..

 

 

십자가는 동산이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도 동산이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능력도 동산에서 맞으신다.

 

 

동산에서 시작된 문제를 동산에서 다시 회복하신다.

그리스도의 인류를 향한 회복은 동산에서 다시 시작된다.

오늘 동산에서 사단과 아담 하와가 만났듯이 예수님은 세상의 ,

예수님을 시험하고 죽이려는 유다와 세상과 만난다.

그리고 아담이 맞았던 영원한 죽음을

예수님은 오늘 동산에서 맞으신다.

 

 

이유는 하나다.

실패한 인간의 모든 약함과 수치와

약함을 회복하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죽음을 이기고 세우기 위해서이다.

 

 

시작한 곳에서 마무리 하시는 예수님이다.

인류의 시간을 통해 아픔이 회복될 같지만,

잊어버리고 그냥 새롭게 뭔가를 같지만

아니다.

 

 

하나님은 자리,

장소에서 문제의 시작을 회복이 시작으로 바꾸신다.

하나님은 아픔을 다시 영원한 기쁨으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은 그렇다.

문제의 시작에서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볼 있는

완전한 자유함이 찾아오게 하신다.

 

 

그래서 베드로의 아픔을 허락하신다.

우리의 아픔,

우리의 약함은 숨기고 외면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면으로 바라볼 있는 용기와 힘과

능력이 생기도록 하나님은 만들어가신다.

 

 

여자에게 빼앗긴 문제를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회복하시고

남자를 통해 빼앗긴 문제를 아담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신다.

 

 

약함이 회복을 지나 능력이 되어야 완전한 이김이 된다.

약함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회복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나의 약함을 지나 강함이 되게하신다.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이기게 하신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하나님을 사랑하였지만

그는 자신을 숨겼고 예수의 제자됨을 숨겼다.

그것이 그의 평생에 아픔이다.

아픔이 약함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님을 장사할 용기를 주신다.

사람을 의식하던 그에게 사람의 눈을 능가하는 용기를 주신다.

그것이 사명이다.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나의 약함을 이기는 것이다.

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용감하게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그래서 장사를 드린다.

그의 약함,

자신을 숨기던 약점을 이기고 나오자 예수님의 장례를 집도하는

주인공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친히 장사하는

주인공이 된다.

 

 

니고데모이다.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다.

사람들의 눈이 두렵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그다.

약함이다.

그의 약점이다.

평생 멀리서 예수를 보지만

진리를 들어 알지만

차마 사람들이 무서워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 정면에 나서지 못하던 그가

예수님께 장례 물품을 드리고 사람들 앞으로 나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갈 주시는 길은

우리의 약함을 이기게 하심으로 자유를 얻게 하신다.

약함이 매여 나무 뒤에 숨은 아담처럼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무덤에

바위로 그곳을 감춘 동일한 역사의 반복 속에

하나님은 모든 약함과 연약함과 실패를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맞을 준비를 하신다.

 

 

나무뒤에 숨은 아담이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약함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만나게 된다.

 

 

자유의 순간 앞에 예수님이 묻혀 계신 것이다.

자리에 자신의 약함을 이기고

자신의 약함을 깨고 담대히 있는 사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이다.

그리고 인류의 약함을 이기시는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류가 죄를 범한 같은 동산이라는 의미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동산은 무엇인가?

우리의 실패한 동산,

우리의 숨어 있는 동산은 무엇인가?

동산에 바위를 세우고 숨어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바위는 숨는 곳이다.

바위는 자신을 숨기는 곳이다.

자신의 수치를 가리는 ,

자신의 약함을 가리는 곳이다.

모든 약함이 있는 곳이 내가 숨은 바위이다.

 

 

아담이 숨은 곧은 나무뒤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8)

 

 

바위를 굴러가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인류를 다루시고

인류를 회복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 개인개인을 다루신다.

나무 뒤에 숨은 아담,

십자가 뒤에 안식하는 우리 모든 인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이 숨은 나무,

십자가를 통해,

아담이 실패한 동산,

십자가가 서고 예수님이 묻힌 동산에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회복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역사이다.

우리의 약함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약함은 우상을 섬기던 가정이다.

그에게 약함은 자신의 조상들 가족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하신 훈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믿음이다.

 

 

야곱이다.

그에게 약함은 속임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붙이신다.

사람을 속이던 자가,

속여서 이기던 자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자로 세우신다.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과 정정 당당히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셨다.

그의 약함을 강함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이다.

 

 

모세이다.

그의 약함은 자존감이다.

그는 나라의 왕자로 궁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질 있지만

그의 약함은 자존감이다.

 

 

출생이 미천하고 그의 행위가 악하여

평생을 도망 다니는 자가 되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친히 기적과 기사와 함께함으로 평생

하나님이 친구가 되어 동행하셨다.

그의 약함을 채우시는 하나님이다.

 

 

어디 사람뿐인가?

여호수아도 그의 약함은 혼자이다.

두려움이다.

모세이다.

모세 없는 리더의 자리는 힘없는 막대기 같고

법괘 없는 이스라엘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놀라운 영광스런 승리들이다.

 

 

엘리야이다.

그의 약함은 삶이다.

먹고 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

생명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생명의 훈련과

죽음을 맞지 않는 승천이다.

 

 

 

바울은 핍박자다.

예수를 핍박하던 과거다.

그런 그에게 과거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는

놀라운 복음 전도가가 되게 하신다.

 

 

베드로다.

그의 부인으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위해 기도하시고

모든 초대교회를 이끄는 위대한 리더로 세우신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약함을 통해 일하신다.

약함을 완전한 자유함이 되도록 치밀한 계획과 마침을 이루신다.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아담의 죄의 시작은 무결점이다.

아무 결점이 없는 것이 결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사단은 생각을 읽고 그렇게 접근했다.

생각은 사단이 먼저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아담의 약점을 알았다.

 

 

 

동산이다.

동산에서의 모든 약함을

동산에서 마치시고 이제 내일 영광스런 회복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뿌린대로 거두시는 분이다.

드린 대로 받으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심음과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허물을 아시고 모든 약함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지금의 자리,

지금의 아픔,

지금의 고통이

회복을 향한,

자유를 향한 아브라함의 13년의 시간이요

모세이 40년이고

요셉의 13년이요

엘리야의 3년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포도주를 좋아하신다.

포도주는 숙성이다.

발효다.

하나님은 버섯을 하루 만에도 자라게 하시고

넝쿨을 하루 만에도 자라게 하시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위해

우리를 오래도록 숙성케 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십자가 하나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년을 키우시고

십자가 역사를 위해 년의 시간을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동산에서 시작된 아픔을 동산에서 마무리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는

나의 약함을 통과할 있도록

훈련하신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하나님을 먼저 만나 훈련하고 씨름하는 시간을 지나고

그리고 형을 정면으로 만나는 만남의 축복을 주셨다.

요셉은 자신만 아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자신만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자로 세우셨다.

자신만 알던 자가

가는곳마다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으로 세우셨다.

 

 

 

우리 인생에 이런 축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그렇게 모든 약함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인생의 에덴과 갈보리 사이에서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유와 평안으로

하늘의 삶을 사는 우리이기를 소망해본다.

 

 

이미 에덴에서 갈보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바꾸신 하나님,

하나님이

인생의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다시 세워가시고 있는 중이시다.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할렐루야!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