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 그리고 다 이루었다(요19:28-34)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는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는 <다 이루었다>입니다.
광야와 갈증입니다.
반석과 생수입니다.
광야와 반석을 깨고 나오는 생수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우물가의 여인이 찾았던 목마름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입니다.
야곱의 우물물이고
홍해이고
요단강이고
세례이고
그리고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외친 마지막 한마디는 '내가 목 마르다'입니다.
그리고 '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 두 외침은 철저히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외친 절규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룬 마침의 소리입니다.
십자가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만남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사람의 결핍과 하나님의 완성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사람의 죄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완성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외치는 예수님의 소리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인류를 아우르는 유일한 한마디가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외친 한마디만 있습니다.
<목마름>과
<다 이룸>입니다.
인간이란…
목마름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추구의 끝은 없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광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지내게합니다.
물을 찾게 합니다.
물을 찾는 인생의 길이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 인생입니다.
찾아도 찾아도 채워지지 않고 찾을 수 없는 인생의 얼굴은 목마름입니다.
목마름에 대해서 세상이 주는 것은
신포도주와 쓸개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당하는 내면의 모습은 신포도주를 먹는 쓴맛입니다.
타고 타 들어가는 갈증에서 인간 세상이 주는 것은 더 목마른
먹지만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신포도주입니다.
그래서 목마름입니다.
인간이 외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
"내가 목마르다' 입니다.
예수님이 살아오신 인간으로서의 삶은
목마름입니다.
그래서 목마른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시고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이야기합니다.
찾아도 찾아도 찾지 못하는 갈증의 해결책,
그래서 인생은 목마름입니다.
아담은 사람의 대표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대표입니다.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대표입니다.
인간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담당하고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당하고
인간 내면의 모든 버림과 외면과 조롱과 절망을 당하는 인간의 한마디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같이 달려있습니다.
오늘 외친 내가 목마르다는 인간이 당하는 내면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절규이자 죽음의 낭떨어지로 떨어지면서 외치는 인간의 소리입니다.
그 인간을 향하여 세상이 주는 것은
신포도주와 쓸개입니다.
마라입니다.
쓴 물입니다.
출애굽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은 쓴 물 마라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쓴물입니다.
그러나 그 쓴맛을 먹는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거기에 나무를 던집니다.
거기에 십자가를 던집니다.
그래서 생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옵니다.
다 예수의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발버둥쳐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으로부터의 모든 것은
목마름입니다.
남편을 일곱을 바꾸어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우물가 여인이고
높은 지위 높은 자리를 차도 채워지지 않는 니고데모입니다.
남들 가지지 않은 물질로 남 부럽지 않게 살지만 채우지 못하는 가슴으로
살아야 하는 삭개오입니다.
그런 인간의 목마름을 표현 한 것이 성경의 사람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외친 것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하십니다.
구약의 수 많은 광야와 물을 찾는 인생을 향한,
세상 온 인류를 향한 예수그리스도의 외침입니다.
목마른 인생을 향한 그리스도의 동질성,
나도 너희와 같은 마음으로 인간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인생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인생을 내가 같이 지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살아가는 삶 속에
그들을 대표하여 외치는 소리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사람이 당하는 목마름은 여기까지입니다.
목마르다 외치는 그 순간 인간의 모든 것을 표현하시고 살아오신 삶입니다.
아닙니다.
목마르다 외치는 것까지가 아닙니다.
목 마르다를 지나 다 이루었다를 가야합니다.
다 이루어야 목마름이 생수가 됩니다.
광야가 생수를 만나고
반석이 물을 냅니다.
요단강을 지나고
홍해를 지나고
세례를 지나야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을 엽니다.
그래서 우슬초를 통해 피를 뿌리고
피를 통해 물을 뿌립니다.
물을 지나야 생명이 옵니다.
물은 성령입니다.
물은 성령입니다.
창을 찔러 물과 피를 솟으신 이유입니다.
성경의 모든 물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죽음을 지나야합니다.
생명은 죽음을 지나야합니다.
그래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우슬초에 묻혀서 뿌립니다.
우슬초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입니다.
피를 묻히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입에,
피에 우슬초를 바릅니다.
거룩케 하는 정결의식입니다.
구약의 정결의식은 우슬초를 사용합니다.
십자가는 임무와 제사를 상징합니다.
임무는 영광입니다.
그렇게 외치던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신이 죽어야 나오는데
아담은 살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 세상에 예수님은 오직 하나를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영광은 인간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살려는 곳에 죽음이고
죽으려는 곳에 생명입니다.
온전히 죽는 곳에 생명이 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이 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완전한 임무의 완성,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우슬초를 통해 자신이 제자의 식을 완성하십니다.
피를 통해 자신을 드립니다.
그것이 양으로서의 자신의 제사입니다.
제사를 지나야 생명이 옵니다.
생명은 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제사는 자신을 깨고 죽는 것입니다.
반석입니다.
반석을 깨야 물이 나옵니다.
자신이 죽어야 물이 나옵니다.
물은 생명이고 생명은 성령입니다.
물과 피를 다 솟으신 그리스도입니다.
물을 내셨습니다.
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야곱의 우물부터,
광야의 모든 반석에서 나오는 물,
요단강의 물을 통한 세례,
물입니다.
물은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물과 피입니다.
피로 제사를 드리고
제사는 죽음을 의미하고
그 죽음은 물을 드러내며
물은 곧 성령을 임재합니다.
성령은 곧 생수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의 피와 물을 솟으심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피는 제사이고 물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죄의 사죄와
새로운 생명의 역사,
피와 물입니다.
놀라움입니다.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구약부터 그렇게 물과 피의 제사로 그림자를 보이시더니
이제 실체로서 하나님의 아들,
인간의 모든 대표로서
모든 모습을 십자가에서 보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목마름을 끝내시고
물과 피를 솟으심으로
죄의 사죄와 생명의 역사를 여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길을 여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통해 모든 죄를 사하시며
물을 솟으심으로 구약이 그렇게 바라던,
광야의 삶에서 그렇게 간구하던 물,
성령이 오심을 예언합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의 완성,
모든 것을 이루시고 다 이루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신 자신을 향하여
<다 이루었다>외치십니다.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다 지시고 목마르다 한마디에 다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 이루신 그분의 사역을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열심도 수고도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법은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법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율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력하고 땀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함이 없고
평안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
그냥 믿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으니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섰습니다.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따르면 이제는 성령,
새로운 세상을 이끄시는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을 움직이는 힘은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십자가는 놀라움입니다.
감격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한마디
목마름 속에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그 목마름을 뒤로하고
다 이루심으로 우리의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이 글을 묵상하는 이틀 동안 눈물이 한없이 흐릅니다.
구약의 수 천 년의 역사가 이룬
인간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서의 역사를 오늘 보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함께 사시며 공감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솟으신 죽음을 통해 여시는 성령의 역사,
구약 곳곳에 이 성령을 주시기 위해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비밀이
오늘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아픔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결코 슬픔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생명이고
십자가는 희망이고
십자가는 내일입니다.
십자가는 피와 물과 우슬초로 우리의 내일을 여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하면 단 한번도 울지 않은적이 없습니다.
성찬식을 하며 단 한번도 그분의 사랑에 눈물 흘리지 않은적이 없습니다.
한국을 잠시 방문해 노회를 참석해 성찬식을 해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는게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를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그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이,
숨겨진 비밀이
하나님의 호흡이 지금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눈물입니다.
그래서 감격입니다.
그래서 사랑입니다.
때로 실패하고
때로 좌절하고
때로 채울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의 목마름으로 살지만
변함없는 십자가의 사랑,
물과 피로 나를 덮으시기에
오늘도 눈물입니다.
더 드리고 싶은 간절함으로
더 알리고 싶은 뜨거움으로 나는 오늘도 그렇게
가슴 벅찬 가슴으로 살아갑니다.
알지 못하는 벅참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가슴 뜨거움이 있습니다.
설교를 위해 설 때마다
말씀을 나누기 위해 설 때마다
내 가슴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이 깊은 십자가의 깊음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감격입니다.
사랑입니다.
희망입니다.
평강입니다.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목마른 우리의 인생을
생수의 강이 흐르는 성령의 삶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 맘과 정성 다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모잠비크입니다. 우리 교인입니다.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또 매일 물을 얻기 위해 1시간을 새벽4시면 걸어갑니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을 걸어옵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듯 목마름을 찾아 헤매입니다.
참 생수는 그리스도안에 성령입니다.
내 안입니다.
찾지 말고 누려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