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나?(요19:25-27)
우리의 강점이자 약점은 복음을 위해 복음만 위한다는 것이다.
가족도, 관계도 무시하는 우리의 잘못된 의식이 아픔을 만든다.
예수님은 오늘 자신의 사역을 다 이루시면서 육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시며
어머니라고 아들이라고 서로에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키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균형이다.
복음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까운 사람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두를 희생시키는 우리의 무너진 균형을 찾아야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다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중에
유일하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6-27)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뜻만 이루려는 성향을 가진다.
복음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이용하고
사람을 팽겨쳐 버리는 일들이 너무 많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지만
어머니를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즉 사람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명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믿는다.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다.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외면하고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특히 가까운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복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죽으시는 순간에
그의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신다.
선교사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자녀와 부모님이다.
어디 선교사만 그런가.
우리 모두의 문제다.
복음 이라는 명분으로 돌아보지 못하고
챙기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참 마음이 아프다.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마음이 쓰이는 일은
내가 아프면서도
내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내가 힘듦을 당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
그것이 아픔이고 사명이다.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예수님의 형제들에게 맡기지 않는다.
이상하다.
왜 부모를 친 자식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나?
가장 아끼던 친 가족을 왜 자식이 아닌 다른 제자에게 맡기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이 실천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예수님은 그 말씀을 스스로 지키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를 친 자녀가 아니라
주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제자에게 맡기고
그 제자는 뜻을 다해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주안에서 친 어머니로 모십니다.
교회는 말씀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자신의 친 형제 자매 부모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친 가족으로 섬기며 아끼는 곳이 천국공동체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복음이라는
하나님 나라라는 명분을 이루기 위해 친 가족은 고사하고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까지 모른체하고 산다.
그것이 우리 교회들의 아픔이고
하나님의 아픔이고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아픔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모른체한다.
헌금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그런데 형제를 돌아보고
친 가족을 돌아보고
아픔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는데는 무관심하다.
이것이 우리의 아픔이고 약함이다.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균형.
헌금을 하는 만큼 형제를 돌아보는 균형이 필요하다.
주를 위해 몸바치는 것만큼 형제를 돌아보는 균형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그래서 생명의 길을 여는 사명을 감당하시지만
자신의 친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줄 제자에게 맡기신다.
베드로가 아니다.
요한이다.
베드로는 장모가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시는 공간과 여유가 있다.
예수님의 지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이다.
무조건적인 맹종이나 헌신에 앞서
지혜로운 물질의 배분과
섬김의 배분과
나눔의 배분의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모른체하는 야만적 종교에서 벗어나야한다.
종교를 지키기 위해 폭탄을 들고
총을 들고
생명을 앗아가는 것,
모두 사람에 대한 이해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예수님은 목숨이 마지막 넘어가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신다.
그런 섬세한 배려와 따뜻함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하다.
어른들이 말씀합니다.
한 부모는 열 자식 먹이는데
열 자신은 한 부모 봉양을 못한답니다.
바쁜 사역 중에도
떨어져계신 우리 모두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안부와 사랑의 전화,
필요한 용돈이라도 정기적으로 보내면 참 좋겠다.
하나님께 드리는 만큼….
예수님이 이루신 것,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 사랑과
그와 같이 이웃 사랑이다.
십자가는 그것이다.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소홀하지 않으려 애쓰려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기억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