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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과연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과연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과연 무엇입니까? (19:17-16)

 

 

하나님을 배반한 것은 아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유대인들입니다.

 

 

빌라도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빌라도의 손을 빌었을 뿐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에덴동산 밖의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에덴동산 안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던 아담입니다.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아담이고 유대인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던 제자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은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가장 알고

내가 가장 정성을 들이고

내가 가장 사랑을 베푼 사람에게입니다.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서보다

나를 너무 알고 나의 마음을 너무 알것 같은 사람에게서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나를 모르는 사람이면

차라니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괜찮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가 가족이 되고

우리의 아픔의 근원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맞습니다.

사단입니다.

사단은 가장 약한 자리를 노립니다.

사단은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을 대상을 찾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약점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알려주듯이

사단은 우리가 가장 많이 아파하고

가장 실망하고 가장 절망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래서 아담이고

그래서 유대인이고

그래서 대제사장이고

그래서 가롯유다이고

그래서 베드로입니다.

 

 

모두다 아픔을 주기 위함입니다.

없을 절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없을 좌절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아프십니다.

예수님은 많이 절규하십니다.

사랑하던 아담에게

사랑하던 백성에게

사랑하던 제자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부인하는 현장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끝이 아니라

끝처럼 느끼는 절망입니다.

사랑의 거절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느끼는 눈물입니다.

 

 

사단은 죽이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죽이지 못하지만 자신만 사랑하게 합니다.

사단은 끝을 내지 못하지만 끝난 것처럼 살게 합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아픔을 당하고

그래서 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게 만듭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욕망의 덩어리로 보게하고

엄마가 아니라 차라리 남의 엄마면 나을 사람으로 보게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정이 들지 못하게

결코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이

세상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나만 사랑하게 하고

그래서 나만 믿게하고

그래서 나만 의지하도록,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도록

나만 위하도록 만드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것을 알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 앞에 벌거벗으십니다.

죽은자만 가는 해골, 골고다로 가십니다.

있을 없는 ,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믿었던 자들에게 배반 당하는 아픔을 지고서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칼을 꽂고서

생명을 던져 함께 했던 사람들의 외면당한 저주의 말을 가슴에 담고서

죽음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절망이라 여기는 순간에

세상은 끝이라 여기는 순간에

죽음에서 생명을 꽃피우십니다.

사막에서 꽃을 피우듯

해골에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을 증명하십니다.

 

 

세상의 끝없는 미움과 배반과 부인에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의 가장 약함을 건드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의지하고

우리가 가장 무너지기 쉬운 부분을 훈련하십니다.

 

 

세상이 있는 모든 절망과 아픔을 지고

세상이 던지는 모든 부끄러움과 배반과 멸시를 안고

아니 던지는 사람들,

상처와 아픔으로 자신만을 사랑하려는 그들을 안고

예수님은 모두와 함께 해골, 골고다로 가십니다.

 

 

함께 죽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입니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사랑은 같이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함께 죽어야 함께 사는 생명의 신비를 알게 하기 위해

모든 세상의 죄와 멸시와 부끄러움과 절망과 눈물을 안고

골고다의 길로 함께 죽으러 가십니다.

 

 

죽어야 삽니다.

절망도 아픔도 눈물도 함께 죽어야 삽니다.

그것을 알기에

죽어야 산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안고

함께 끌어안고 죽으십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아픔입니다.

우리의 허물입니다.

우리의 약함이고

우리의 못난 자아입니다.

 

 

모든 것을 안고 주님은 오늘 십자가 있는 골고다로 가십니다.

모든 사람이 던지는 돌들을 안고

아니 모든 사람까지도 안고 골고다로 가십니다.

 

 

골고다는 죽음의 장소,

해골이라는 죽음,

소망이라고는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죽음의 장소 골고다.

그곳은 주님은 자신이 세상을 안고 가십니다.

 

 

죽어야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이미 세상의 영으로 물든 우리의 세포세로가

십자가 골고다, 해골에서 죽어야 다시 하나님이 살리기에

예수님은 함께 죽으로 가십니다.

 

 

 

위대함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함은 모든 안고 가는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함을 위해

살려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같습니다.

세상은 위대해 지기 위해 살려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입니다.

 

세상에는 이미 위대함으로 살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위대함,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인류가 위대해 지려합니다.

우주 생명들이 기록을 깨고

남들이 가지 않은위대함을 이루기 위해 살려합니다.

 

 

아닙니다.

위대하고 광대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죽으십니다.

이유는 죽어야 위대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길을 여기시 위함입니다.

 

 

자를 섬겨서 자신도 커지는 세상에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진다는 것을 몸소 보이시기 위해

작은자,

아니 원수를 위해 오늘 세상을 끌어안고 죽으십니다.

원수도 세상이기에

원수도 안고 골고다 해골을 향해 걸으십니다.

 

 

걸음이 아릅답다하지만

죽음입니다.

아픔입니다.

 

 

세상에서 걸음은

세상의 눈으로 이해할 없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은 이해하지 못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생각,

세상의 합리와 이성으로 절대 납득할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걷는 길은 이해하는 길이 아니라

믿는 길입니다.

믿음의 길입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믿음이 필요하고

길을 바라보는 우리도 믿음이 필요한 길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

세상의 합리로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세상천지를 창조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

그분들의 존재형성의 근원이

믿음으로 아담을 세우신

믿음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은

하나님 나라는 믿음이 회복된 사람만 다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믿음으로 보는 길입니다.

이해하고 생각하고 이성으로 합리로 결코 없는 세상,

믿음의 나라입니다.

 

 

죽어야 살고

살려면 죽는 나라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나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아지면 높아지고

섬기기 위해서 살고 높아지기 위해서 죽는

자가 아니라 작은 자만 삶의 목표가 되고

죄인과 먹고

세리와 함께하고

시골 어부들이 친구가 되는

세상의 논리로는 절대 이해할 없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버리면 보입니다.

포기하면 들입니다.

죽으면 생명이고

살려면 죽게되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세상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아들이 작은 자를 섬기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백성에게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버림을 당하고 배반을 당하고

십자가에 팔리는 이런 모든 일의 상징

십자가!

 

 

십자가에 나의 전부를 걸어야합니다.

십자가에 인생을 걸어야합니다.

십자가의 삶이 내가 영원히 사는 삶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싶습니다.

나의 목적을 위해 예수를 믿고

나의 뜻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나의 높음을 위해 날마다 선악과를 따먹는

나의 위대함을 위해 작은자가 보이지 않고

나의 복을 위해 십자가를 외면하는 이런 삶으로

예수님을 죽이고 십자가에 팔고

삼십에 생명을 팔고

자신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바벨탑을 위해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이런 삶은 아니어야합니다.

 

 

나만 살고

나의 자녀만 잘되고

나의 길만 보장 되면 된다는 이런 세상은

우리의 눈물이고

믿음의 자녀들의 아픔이며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비수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답은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흔적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세상에 놓은 길입니다.

 

 

십자가,

죽음에서 생명을 피우는 길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우리의 십자가는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나의 잘됨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나의 형통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나보다 남을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것입니다.

 

 

날마다 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느 순간,

어는 장소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날마다입니다.

 

 

앞에 놓인 날마다의 십자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보일

내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보일 예수님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보일 생명이 잡힙니다.

 

 

시대는 우리에게 말씀하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라는 주님의 음성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다시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아니라 이웃입니다.

그들을 지고

그들을 업고

그들을 안고

그들을 섬기고

그들을 베풀고

그들을 나보다 먼저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나를 사랑함 같이….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