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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19:1-7)

 

 

하나님이 싫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죄를 향한 욕망이 불타는 것입니다.

스스로 왕이고 싶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불타서 그렇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를 찾지 못합니다.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문제가 있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예수님의 때문에 십자가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죄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입니다.

스스로 왕을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입니다.

 

 

"빌라도가 ~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4)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6)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안에 빛을 거부하는 본성이 문제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이 오면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어둠을 깨닫지 못합니다.

 

 

머리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은 공감하지 못합니다.

죄를 짓지 않음을 알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기에 그것을 숨기는 것입니다.

 

 

어둠은 어둠의 실체가 드러나기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어둠이 드러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자신의 어둠을 밝히고

자신의 악을 세상으로 알게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단계는

빛으로 가는 걸음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관문은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후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서 "우리가 어찌할꼬"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7-38)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빛이 와도 어둠은 빛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니 빛을 인정하려면 자신의 어둠과 악과 죄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모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했습니다.

믿음은 자신이 죄인인 것과 오직 예수님 만이 생명임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의 깨달음 없는 의인은 없습니다.

의인이기 이전에 죄인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합니다.

 

 

오늘 무리들은 죄를 찾지 못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한,

자신들 스스로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가장 죄가 무엇일까요?

가장 ,

가장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이 되려한 죄입니다.

인생을 내가 왕이되고 주인되려한 죄입니다.

 

 

그것을 회개해야합니다.

그것을 돌이켜야합니다.

 

회개와 돌이킴은

그냥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 강도처럼 오늘 죽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우리는 아직 생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책임성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책임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나의 왕자리,

나의 주인자리,

나의 하나님 자리를 내어주는 삶입니다.

 

 

믿음은 믿음과 행함이라는 야고보의 말씀이 이해가 되어지는 부분입니다.

믿음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살았는데

이제 예수님 만을 믿고 살아도 세상에서

영생,

능력으로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되지 않아도

예수님을 주인 삼고 살아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나의 힘을,

나의 재주로,

나의 경험으로

나의 가진 물질로 살았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있다고 믿고

나의 내려  놓고 하늘의 만나를 바라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믿음은 순간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인생의 왕이요 주인이요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예수를 박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인생의 하나님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하나님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

잃어버림으로 모두가 사라진 근거인

믿음을 다시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순간의 고백과 함께

영원까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나의 삶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물질도 나누고

작은 자를 섬기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며

벗을 자에게 옷을 주며

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편 뺨도 내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는 ,

선악과를 손대지 않는 삶입니다.

 

 

선악과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는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 지금 우리에게 선악과입니다.

그것이 비전이든

물질이든

관계이든

일이든

모두 한가지입니다.

 

선악과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아담이 실패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선악과를 손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선악과는 죽음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얼만든지 죽음을 넘어갈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 예수님은 선악과를 손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선악과는 죽음입니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있고,

넘어갈 있는 죽음,

죽음을 맞이 하십니다.

그것으로 아담이 실패한 믿음에 성공하십니다.

 

 

아담이 실패한 것을

두번째 아담이 성공하십니다.

 

 

믿음과 선악과와

하나님의 자리와 세상이 실패한 모든 것을

십자가와 함께 모두 성공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능력은 것이 아닙니다.

손만 뻗으며 얼마든지 먹을 있는 선악과에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는 하는 것이 능력으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능력은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외침에도

빌라도의 질문에도,

군인들의 모욕과 뱉음과 뺨을 때림에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이것이 능력인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능력보다 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의지 했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전보다 귀하게 회복하실 것이라는 믿음,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의 능력보다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아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에 널려있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능력,

사람들이 왕처럼 받드는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을

하나님이 존귀한 것으로 채우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능력은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닙니다.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아무일 하지 않는 침묵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침묵입니다.

믿을 때만 가능한 무한한 깊이의 능력,

침묵입니다.

 

 

 

 

 * 요하네스버그 3, 6구역이 토요일에 드롱콥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전기도 없고 물도 공도 수도를 사용하는 이곳에

귀한 선물과 음식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방문을 했습니다.

파니 전도사가 순교를 당하고 후임으로 무따디 전도사님이

사역을 잘하고 계십니다.

상처를 싸매고 아픈 과거를 말씀으로 치유하고 있습니다.

구역이 오셔서 음식을 대접하시고 전도도 하시고

함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하며 아름다운 나눔을 함께한 3구역 6구역!

방문한 구역과 섬겨주신 구역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