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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을 구하고 주님은 이 세상을 버립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구하고 주님은 이 세상을 버립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 주님은 세상을 버립니다.

(18:28-40 )

 

 

구하는 자가 강하겠습니까

버리는 자가 강하겠습니까?

거래의 법칙은 미련을 두면 지는 것입니다.

미련 없이 거래해야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땅이 목적이 아닙니다.

땅은 영원을 준비하는 광야입니다.

가나안을 위한 준비,

광야입니다.

 

 

가장 높아지는 법은 가장 낮아진 곳에 내려갈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까지 우리를 높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약속하시는 비밀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관문을 통과 해야 하고

그것은 비교의 눈초리를 무시해야 하며

편안함을 포기해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마디로 세상 것에 대해 관심이 없어야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미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라도가 던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으실

대답하신 것은 나라는 세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고도 포기하고

자신의 힘과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집도 거처도 머리 곳도 없이 살았던 이유는

주님의 나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상이 주님의 나라면 주님은 종들을 통해 싸웠을 이라하셨고

유대인들에게도 넘겨지지 않았을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그렇게 낮은 자리를 찾으시고

낮고 천한 사람과 함께한 하고

죄인들과 먹고

맞으시며 고초를 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실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것에 대해 미련이 없습니다.

세상은 주님의 나라가 속하지 않아서입니다.

땅은 단지 주님의 나라에서 받을 것들을 위해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땅이 목적이면 전부를 걸어야합니다.

그러나 땅은 준비입니다.

하늘을 사는 사람은 하늘을 준비합니다.

땅을 사는 사람은 영원히 지을 집을 준비해야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이 땅을 사신 방식입니다.

 

 

우리는 땅에 전부를 걸고

주님은 하늘에 전부를 걸었습니다.

왕이어도

하나님이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땅은 오직 준비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지만

땅이 영원한 삶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성적 유실론자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천적 무실론자입니다.

표현은 김동인목사님의 설교 하신 표현입니다.

실천적 무실론자…

 

좋은 말입니다.

우리는 이성적 유실론적 삶에서

실천적 무실론적 삶에서

실천적 유실론적 삶을 살아야합니다.

 

 

의미는 땅이 준비라고 믿는 사람만이 있는 삶입니다.

땅이 영원이라고 믿으면

결코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비된 나라가 있고

예비된 처소가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25:34)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2]

 

 

 

주님은 땅이 영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원을 위한 예비된 처소를 예비하신다 했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낮은 곳에 거하게 됩니다.

가진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가진 것에,

자리에,

권력에,

물질에 미련을 두는 것은 아직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주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비된 나라,

우리를 위해 준비된 처소를 믿지 못해서입니다.

땅이 준비이고

땅이 영원을 위한 에덴동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담이 시험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불같이 강한 것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고전3:13)

시험은 다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아담에게 선악과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는 예비된 나라가 있습니다.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믿음이 땅에서의 삶이 선악과를 먹는 삶이냐

믿음을 지키는 삶이냐로 결정이 납니다.

 

 

땅이 영원하다 믿으면 결코 준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원입니다.

땅은 영원이 아닙니다.

영원은 영원이 거할 영원의 장소에 거해야합니다.

그곳에 거하기 위해 주님은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적 선악과를 세상에서 지켜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면 버리지 못합니다.

부자청년은 땅에서의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에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의 자리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

영원한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이 배설물이고

세상이 사라질 안개며

세상이 피었다 지는 꽃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영원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영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진정한 준비를 있습니다.

 

 

가나안은 광야의 삶에서 배운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나안은 애굽에서의 미련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애굽의 삶을 청산하고

애굽의 삶을 그리워하던 사람이 죽어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결을 요구받았고

거룩함을 요구받았습니다.

 

 

성결과 거룩함의 핵심은 영원을 보는 눈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하나님이 싸우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보는 눈입니다.

 

 

눈이 떠지지 못하면 영원을 보지 못하기에

믿음은 영원을 보는 사람만 사는

하늘의 삶입니다.

 

 

이성적 유신론자로 살지만

실천적 무실론자로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포기해야합니다.

 

 

애굽의 삶을 포기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영원의 상징인 가나안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상징인 빌라도에게 나라는 이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이 이해가 됩니다.

그제야 예수님의 이야기가 이해가됩니다.

 

 

그분의 삶이 가벼운지,

그분의 마음이 쉬운지,

땅에 미련이 없고

전부를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하며 사셨는지 이해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몸으로 세상을 사셨으나

영원의 눈을 통해

몸은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사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살았던 방식이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늘의 삶입니다.

 

 

땅은 하늘의 삶을 영원히 사는 준비입니다.

애굽의 살지만 가나안처럼 살아야합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영원을 사는 것처럼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낮은 곳에 자신을 드림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높은 주님의 보좌 옆에서 먹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열두 보좌에서 함께 춤을 추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원이 아닙니다.

세상은 단지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입니다.

 

 

 

주님은 영원을 살게 하기 위해

땅에서 가장 미련을 두는 것을 깨뜨리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고,

모세에게 자리이고

요셉에게 자존심이고

엘리야에게 생존이며

바울에게 자신의 의로움입니다.

 

 

깨뜨리기 전에 내려놓으십시오.

옥합을 깨뜨리는 것은 주님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원을 준비하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나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깨뜨릴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영원을 사는 방법!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가장 소중한 !

왕의 자리,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입니다.

 

 

오늘 예수님 자신도 그것을 내려 놓았습니다.

바라바를 살리고

가치도,

한치의 가치도 없는 바라바를 살리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아들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유는 땅은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사는 준비!

 

 

세상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